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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 10

송대자기-鲁山段店窑-北宋 汝窑系

중국 송대에는 많고 다양한 지역에서 도자기를 생산하였는데, 특히 당시의 수도였던 하남성 개봉 주변에 많이 분포하고 당시의 명요들도 이 지역에 집중되었다. 보통 송대의 명요로 여 관 가 정 균요를 들어 5대 명요라고 한다. 그 중 우선 여요를 지금까지 송대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데 , 여요의 요지는 하남성 여주요의 청량사라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발굴 연구자료를 보면 하남성의 여러 요지에서도 동일하게 여요계열의 작품이 나오고 있어 지금까지 알려진 여요 요지의 작품이 아니어도 여요계열이라고 해서 중시를 하고 있으며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본 기물은 그 요지들 중 노산 단점요의 작품이며 시기로는 여관요(북송 말기)보다 이른 송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아래는 우리 고려청자에도 있는(청자..

艾叶绿石(aiyelvshi;애엽록석)年年有余

쑥 녹색석 이라는 뜻의 오랜 전통의 녹색돌이다. 복부에 보통 은 혹은 금속의 부속물이 부착되어 있는데,어두운 밤에 별빛을 받아 반짝거리기도 하며 녹색 중에 황색이 나타나 비취나 옥과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여 송대때 부터 귀한 조각 등 장식물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청대 중기 이전에는 모든 석(돌)들의 우두머리라고 하여 얻기어려운 귀한 보물로 여겼다. 고대에는 田黄、白芙蓉과 더불어 艾叶绿石을 寿山石三宝라고 하였으며 그 중 艾叶绿石을 최고로 쳤다. 참고로 본 기물과 비슷한 류의 전황석의 경우 경매에서 중국돈 1000만원정도에 낙찰이 되기도 한다. 많은 물고기를 세밀하고 정밀하게 조각하여 年年有鱼(앞으로 영원히 부족하지 않는, 여유있는 삶을 산다는)의 뜻을 가지며 본기물은 청대 중후기의 작품이다. 아래는..

고려청자-阴刻刻画纹斗笠盏

고려시대 12세기경의 작품으로 기형은 고려청자에서 드문 두립형의 잔이며 밖은 무紋이며 안쪽에 세밀하며 정밀하게 음각으로 문양을 두었다. 문양의 내용은 선녀가 과일을 전하는 내용인데 둘레에 여의두문을 두어 吉祥의 끊임없씀을 기원하였다. 아래는 같은 시기의 유사한 작품으로 한국의 박물관 소장품이다. 아래는 한국 중앙박물관의 고려청자 일부

清代乾隆청대 건륭 - 粉彩九桃纹带盖碗 분채완

청대 건륭시기 분채완;정식이름은 清代乾隆粉彩九桃纹带盖碗, 본 기물은 청대 건륭시기의 분채 관요완으로 문양은 아홉개의 복숭아로 장식하였는데, 아홉개의 복숭아는 기원하는 모든것을 이룬다는 뜻의 吉祥문이다. 보통 吉祥萬意라고한다. 그 중 특히 장수를 기원하는데 사용되는 전통문양이다. 아홉개의 복숭아 문양은 청대에 황실 제례 혹은 진열에 사용되던 고유의 문양이며 민간에서의 사용은 제한되었었다. 청대 도자기의 많은 종류 중 본 기물은 분채에 속하며 전체 기형은 정밀하며 정제된 기품을 갖고 있고 기물의 두께는 균일하며 얇고 선명한 백색 바탕에 아름다운 아홉개의 복숭아 문양을 두었다. 건륭당시 훌륭한 관요 분채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소장의 아홉개의 복숭아 문양 天球瓶。본 기물과 직접비교는 어..

宋代越窑-송대월요 越窑龙首提梁盉

송대 초기의 기물로 용도는 술 주전자이다. 중국 도자사에서 월요는 청자의 시초이며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들로 판단하면 한대 (기원전202—기원 후220年)까지 거슬러 간다. 초기에는 조잡한 청자가 나오다 당대(618年—907年)전후 부터 정교하고 아름다운 청자를 만들게 되는데, 당대에는 이를 비색청자라 하여 황실전용으로 정하여 제작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당대 후기부터 송대에이르러는 민간에서도 유통이 되게 되는데 송대이후부터 쇠락을 하여 ,월요는 당대와 송대까지의 작품을 최고로 여긴다. 본 기물은 송대 초기의 작품으로 춘추전국시대의 청동기인 盉(he 허)를 본떠 만든 것으로 , 당시 많은 도자기들이 청동기를 본떠 만드는 유행에 따른것이라 할 수 있다. 정식 이름은 越窑三蹄足夔龙流弦纹螭首提梁盉이다...

周代 청동기-铜镜동경

铜镜동경은 제일 처음 商대때 부터 제작이 되었는데, 다른 청동 작품들과는 달리 재료안에 주석의 함량을 아주 높여 특별한 용도로 쓰였다. 생활용구인 동경은 상대때에는 제례의식에에 사용되다가 , 周대인 춘추전국시대와 그 후대인 진대에는 왕과 귀족들만 사용되다, 漢대에 이르러 민간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동경의 용도를 보면 처음에는 밤에 달빛을 이용한 조명의 용도로 사용되지만 점차 후대에 이르러 지금의 거울의 용도로 점차 용도가 바뀌게 된다. 동경은 송대이후 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문양과 제조기술을 달리하며 제작이 되어 왔는데, 이때는 이미 용도가 아닌 장식용으로 활용되었으며, 제작 기술 및 작품의 수준을 보면 초기인 상대와 주대(춘추전국)의..

商代 청동기- 爵(jue)

爵(jue)은 중국의 기록상의 두번째 왕조인 商代의 청동 유물이다. 상대商朝(约公元前1600年~约公元前1046年)이전 夏代(约前21世纪—约前16世纪)가 유물과 유적이 없는 이름만 있는 상황에서 최고로 오랜 역사 유물이라 할 수 있다. 爵작은 원래 食器(酒)의 용도 였으나 점차 중요성이 커져 제례의식에 사용되고 후에는 왕위계승의 절차에서 계승의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기물이 되었다. 본 爵은 지금으로부터 3천100여년전인 상대 말기의 작품으로 당시의 중국 청동기 유물들과 비교하여 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유물들이 한대때 부터 지금까지 많이 출토되고 지금은 많은 중국내 박물관에 소장이 되고 있는데 그런 자료들을 통해 상대와 周代까지 제작이 되고 각 특징에 따라 시대 구분이 가능하다. 일부 기물에서는..

명대 景泰蓝경태람,铜胎掐丝珐琅불상

景泰蓝,亦称“铜胎掐丝珐琅”,경태람불상인데 경태는 명태의 황제(1450~1457년) 경태시기에 최고의 수준을 내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태람이라고 하는데, 동을 기본 재질로 하여 동선으로 문양을 짜고 그 문양에 법랑이라는 특수 안료를 메워 만든 것을 말하는데, 명대 경태시기부터 청대 전반의 시기에 활발하게 제작 되었으며 청대 초반까지는 황실 전용의 용품혹은 장식품으로 제작이 되었다. 제작된 종류는 다양하여 황실 여인들의 치장 용품으로도 제작이 되고 청대 중기 이후부터는 민간에도 유통이 되게 되었는데, 이의 제작은 북경에서 이루어 졌으며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며 제작이 되고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본 작품은 명대 말기의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청자 ;철채상감조롱박문청자

호리병 혹은 조롱박이라 불리는 모양을 하고 있는 이 기물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전체 색은 검은 커피색을 띠며 백색의 조롱박문양(박 과 잎: 다산의 의미를 갖는)을 상감으로 처리하였다. 표면이 검은 것으로는 흙유라는 제작 기법도 있는데, 이 기물은 고려의 청자와 같은 제작 방식으로 제작이 된 것으로 보통 철채청자라고 부른다. 도자기를 만든 주 원료인 흙과 유면은 청자와 동일하며 단지 표면에 철사라는 원료를 입혀 색을 내고 청자의 상감기법과 같이 해서 백색으로 문양을 내고 그 위에 청자유약을 입힌 것이다. 기물의 입구를 보년 청자유면을 확인할 수 있다. 철채청자는 다른 고려청자에 비해 현존 수량이 극히 적어 더욱 귀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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