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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연적 6

고려시대 청자와 연꽃

고려시대 청자와 연꽃 고려시대 청자양각연꽃모양 연적 青瓷阳刻莲花形砚滴 높이 10.8cm 고려 12세기 연꽃모양을 형상화한 연적인데 이런 류의 상형청자와 음각 연꽃무늬등 당시 많은 기물들이 연꽃문양을 넣어 작품을 만들었는데 연꽃이 상징하는 의미와 고려시대에 특히 연꽃을 선호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연꽃은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식물이다. 연은 흙탕물에 자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불염성(不染性)에 한없는 신비를 느껴 신성시하였고 또 사랑하였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만다라화(曼茶羅華)라고도 한다.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오묘한 법칙이 연꽃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와 《삼..

고려시대 청자연적-고려문인 이규보와 청자연적

고려시대 청자 연적-고려 문인 이규보와 연적 고려 12세기 상형청자 동자형 연적과 원숭이모양 연적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第8卷 古律詩 / 靑磁硯滴 이규보(李奎報, 1168~1241) 幺麽一靑童 緻玉作肌理 (요마일청동 치옥작기리) 曲膝貌甚恭 分明眉目鼻 (곡슬모심공 분명미목비) 競日無倦容 提甁供滴水 (경일무권용 제병공적수) 我本好吟哦 作詩日千紙 (아본호음아 작시일천지) 硯涸呼倦僕 倦僕佯聾耳 (연학호권복 권복양농이) 天喚猶不應 喉嘎乃始已 (천환유불응 후알내시이) 自汝在傍邊 使我硯日沚 (자여재방변 사아연일지) 何以報爾恩 愼特無碎棄 (하이보이은 신특무쇄기) 어느 한 청의동자(靑衣童子) 고운 살결 백옥 같구나. 허리 굽실거리는 모습 공손하고 얼굴도 눈매도 청수(淸秀)하구나 종일토록 게으른 태도 없어 물병 들고..

고려시대 원숭이모자 모양 청자연적

고려시대 원숭이모자 모양 청자연적(靑磁 母子猿形 硯滴) 높이 10cm, 12세기 전반기 비색 상형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 간송 미술관의 국보 270호와 비교해서 같은 기형인데 몸체 문양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고 바닥의 제작 방식에서 박물관의 것은 내화토를 사용해서 구웠고 본 기물은 규석받침을 사용해서 구운 차이가 있다. 그리고 원숭이의 꼬리 처리가 국보 270호는 표현을 안 했는데 , 본 기물은 등 뒤에 꼬리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외 유면의 색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모두 고려 초기의 비색 자기 범주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본 기물의 몸통과 표현이 같은 문양 의 예(중앙박물관) 아래는 간송 미술관의 국보 270호

고려시대 청자 석류모양연적

고려시대 청자 석류모양연적 고려시대 12세기 높이 7.2cm 석류는 풍요를 상징합니다.수수한 모습으로 별로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가을날 익을 대로 익어서 스스로 붉은 배를 갈라 속을 터뜨리면 그 속에 진주보다도 더 영롱한 붉은 알을 수없이 배태하고 있음을 목도합니다. '평범 속의 비범한 풍요'가 바로 석류의 함의(含義)라 합니다. 한국에는 석류가 고려 초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익어서 배가 갈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형상화 했는데 잎과 함께 손잡이 물 따르는곳까지 현실감있게 표현 되었다. 기능적으로도 손에 쥐기 편한 손잡이와 실제 물을 넣어 따르는데도 편리와 기능성이 있다. 유면의 색은 전형적인 비색이라할 수 없지만 아주 투명한 유리질감을 보여주며 옥의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복부에 음각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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