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960-1279) 요주요耀州窑
송대(960-1279) 요주요耀州窑
요주요는 송대 5 대 명 요와 더불어 여섯 번째로 꼽히는 큰 명성을 갖고 있다. 요주요는 당 대때부터 황실에 공납을 하는 등 일찍이 명성을 떨쳤다. 송대에 최고 절정기를 맞는다.
요주요는 지금의 협서성 동천 시 황보 전(陕西省铜川市的黄堡镇)에 있는데, 당 송 시기에는 요주 관할지역이라 요주요라 불린다. 당 송 시기 북방지역의 청자를 대표하는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요주요에서는 청자 외에도 백유 흑유 청유 갈색유 녹유 삼채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神宗元丰(1078-1085)至徽宗崇宁(1102-1106)的三十来年间,曾为朝廷烧制贡瓷。
역사 문헌에 따르면 "북송시기 신종 원풍(1078)부터 휘종 숭녕(1106)까지 약 30여 년간 황실에 공납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 공납을 했다는 요주요의 작품 등급이 아마 이 정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중국 산시성 서안시 근교에서 당 송 금 명 청대의 약 40여 개 묘지를 발견하여 발굴을 하였는데, 그중 5개가 북송시기 묘였다. 그중 하나가 북송 말기 맹씨성을 가진 맹 씨 가족묘로 밝혀졌는데, 거기 묘석과 함께 당시의 요주요 작품 여러 점이 함께 발굴되었다. 아래는 그 작품들 사진,
북송 말기의 작품들로 북송 초기의 작품들과 비교해서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래는 북송 말기의 것으로 여겨지는 소장품 ,
이 사두의 기형은 춘추전국시대 이 전부터 청동기의 주요 기형 중 하나였다. 사두의 용도는 보통 침이나 음식 찌꺼기를 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당 송 시기 제례 필 수 용품인 것으로 보아 실제 용도는 그 이상이었을 것으로 본다. 하나는 침을 뱉는 용도가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고 그 가시 등을 담는 용도와 다른 하나는 차를 마시고 그 우려낸 차를 담는 용도였을 것으로 판단한다.
사두는 당 송 시기 요주요와 월요의 주요 기형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