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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高丽镶嵌青瓷 牡丹唐草纹壶 높이 20.8cm 13세기 후반으로 추정 아래는 본 기물과 거의 같은 작품으로 일본의 개인 소장품이라고 함. 이름은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이며 높이 22.1cm 로 공개된 하나의 작품 두 종류의 사진 13세기로 추정 이 작품은 일본의 개인 소장품으로 더 이상의 설명과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고려시대 청자로 보기 드문 유형의 항아리 기형으로 ,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는 민간에 까지 많이 좋아했던 , 지금도 달 항아리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는 그런 기형이다. 12세기 전성기때의 청자 상감작품들과 비교해서 (흑 백)상감과 유면에 뚜렷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안정된 기형과 유면의 색 , 그리고 전반적인 그림의 배열등으로 보아 ..

宋代 定窑-黑定 송대자기 정요-흑정

宋代 定窑-黑定 송대자기 정요-흑정 定窑-黑定 莲花纹盏 정요 흑색 연화모양 잔 높이 10.4cm 북송시기 정요는 북송대 말기 여요가 최고의 자기가 되전 까지 송 초기부터 황실에 공납되던 황실 자기로 南宋叶寘《坦斋笔衡》说:“本朝以定州白瓷器有芒,不堪用,遂命汝州造青 窑器,故河北、唐、邓、耀州悉有之、汝窑为魁。 남송시기 저술에 "정주백자-정요-에 뒤집어 굽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 여주에 청자-여요-를 만들게 했다"는 ,,, 즉 이 전까지는 송대 황실의 공납자기 였던 것이다. 미국 보스톤 박물관의 정요- 그 중 검은색 정요 한점 정요는 보통 백자를 의미하는데 드물게 다른색들을 만들기도 했는데 , 明曹昭《格古要论》: “有紫定色紫,有墨定色黑如漆,土俱白,其价高于白定, 俱出定州。 명대의 유명한 저술인 격고요룬에 "포도색을 ..

清代康熙 青花 松鼠葡萄纹碗 청대 강희 다람쥐포도문 청화완

清代康熙 青花 松鼠葡萄纹碗 청대 강희 다람쥐포도문 청화완 입구지름 20.8cm 주요 특징은 康熙 薄胎 芒口 강희 얇은 태골, 뒤집어 굽는 기법사용 대명성화년제大明成化年制관지가 있으나 청대 초기 강희 시대 관요 작품으로 추정 대명 성화년제 관지와 얇은 태, 뒤집어 굽는 기법사용, 청화색과 유면 동일의 미국 메트로 폴리탄 소장품으로 청대 강희로 표기 본 기물의 문양인 담람쥐와 포도문양은 중국 미술에서 당대로 까지 올라가는데 당대에는 청동으로된 동경铜镜문양에 사용되기 시작해서 송대에는 그림 작품들에 , 그리고 명대에 이르러는 그림과 다양한 공예 미술품들에 사용되었는데 그 중 특히 도자기에는 이미 보편화가 되었다. 이의 전통은 청대를 이어 민국시기까지 이어진다. 이 문양에서 다람쥐는 12간지의 첫번째인 子를 의..

明代 洪武 釉里红 缠枝牡丹菊纹碗명대자기 홍무시기 유리홍완

明代 洪武 釉里红 缠枝牡丹菊纹碗명대자기 홍무시기 유리홍완 입구 지름 21.6cm 홍무洪武(1368~1398) 시기 유리홍 완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홍무)은 원래 젊은 시절 밥을 제때 제대로 먹기위해 스님이 되기도 했지만 한때의 직업으로 도자기를 파는 장삿꾼이기도 했답니다. 홍무시기의 관요 도자기 중 아직 공식적으로는 "대명홍무년제"같은 관지는 없다. 관요와 민요의 구별이 없는 셈이다. 원 나라를 멸망 시키고 새로 건국을 하는 과정이라 당연히 혼란 스런 상황이며 , 건국시기의 수도는 지금의 남경으로 홍무 다음의 황제인 영락시기 지금의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명대 정식 관요의 구별은 이 두번째 황제인 영락 시기 후반기 부터 가능한데 바로 사회의 안정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어쨌든 본 작품은 당연히..

清代 道光 粉彩蝈蝈纹一对小杯 청대자기 도광 분채 여치문 잔

清代 道光 粉彩蝈蝈纹一对小杯 청대자기 도광 분채 여치문 잔 높이 5.6cm 입구지름 7.5cm 道光도광시기(1821~1850) 분채 잔 기벽은 얇고 순백의 백색도가 높은 유면위에 여치를 사실적으로 그린 분채로 도광시기 수준높은 관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돈 130여만원에 낙찰된 제백석의 여치그림 여치는 중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여치의 중국 이름인 蝈蝈는 중국의 첫 왕조인 하 은 주의 하나라 임금 禹씨를 가르키기도 하고 후에는 발음과 관련해서 관직에 든다 는 뜻을 갖기도 해서 송대 부터 이를 취미로 키우기도 했는데 특히 청대에 많은 유행을 했다. 중국에서 여치 곤충은 여러 곤충중 제일 친숙한데 다른 예술 분야에서는 간혹 있어 왔지만 ,역대 도자기의 문양에서 여치를 소재로 한 문양은 청대 도광시..

清代乾隆 斗彩 三多纹 水盂 청대 건륭 두채 수우 자기

清代乾隆 斗彩 三多纹 水盂 청대 건륭두채 수우 자기 높이 3.8cm 청대자기 건륭시기 두채 삼다문 수우(연적) 口沿向内敛起,直腹,底内凹。口沿饰如意云头纹一周,壁上斗彩绘折枝寿桃、佛手、石榴三多果纹。近足外饰以海水纹。器形规整釉面匀净。青花发色清丽,釉上彩色泽清雅,呈现和谐之美。水盂为文房用具,乾隆以後除实用价值外,更多把玩之用。 아주 작은 크기의 문방 용품인데 , 우리의 연적 용도로 수우라고 하는데 두채의 제박방식으로 삼다문三多紋을 그려 넣었다. 그래서 크기는 작지만 의미는 아주 큰 그런 작품이다. 기물 입구에 구름문을 그리고 기물 밑 쪽에 바닷물 문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중간 전체에 삼다문을 장식하였다. 중국 청대 특히 건륭시기 도자기중 두채와 분채에 삼다문 문양을 많이 넣었는데 삼다문이란 장수(壽)와 복(福)을 기원하..

明代 成化瓷器 黄蜀葵纹 天字罐 宫碗 명대 성화자기 황촉규문

明代 成化瓷器 黄蜀葵纹 天字罐 宫碗 명대 성화자기 황촉규문 전자관 과 궁완 명대 성화년제 청화 궁완 青花宮碗 / 청화 천자관 青花天子罐/ 두채 천자관斗彩天之罐 모두 그림의 소재는 황촉규黄蜀葵인데 쉽게 닥풀이라고 한다. 원산지가 중국인 식물로 흔한 꽃인데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가 하늘의 뜻을 받든다는 의미로 황실에서 예술이나 여러 실 생활 용품등에 표현되어져 왔다. 명대 성화(1465~1487)시기의 청화靑花 색조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성화시기 초기 의 것으로 수마리칭이라는 원료의 채용으로 선덕시기의 청화특징을 보여 주며 청화 색에 있어서만은 선덕과 구별이 어렵다는, 후에 성화成化 중후기가 되면 피당청陂塘青(평등청) 을 사용하게 되는데 후의 홍치시기의 청화와 유사하게 된다. 위에 보이는 청화색과 ..

南宋 湖田窑 青白釉 花纹小水注 송대자기 호전요 청백유 수주

南宋 湖田窑 青白釉 花纹小水注 송대자기 호전요 청백유 수주 높이 7.6cm 남송시기 호전요 湖田窑 青白釉 작은 주자 문방용구로 우리의 연적에 해당하는데 은은한 청백유로 꽃과 줄기 잎을 표현하여 당시 사대부의 운치와 기품을 잘 느낄 수 있게 표현해 준다. 중국 도자기에서 호전요는 북송때 부터 제작이 되어 왔는데 북송시기 5대 명요등 많은 명품들이 있어 황실에서 그리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송이 멸망하고 남송에 이르러 호전요의 제작 수준이 월등히 진보하고 당시 사회 상황을 반영한 작품들의 출현으로 황실은 물론 일반 지배 계층에서도 많은 수요가 있었다. 그러나 본래 기물이 얇아 보관에 어려움이 있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어 지금 각 박물관에 남아 있거나 민간에 유통되는 진품은 아주 드문데 시장..

明代玉堂清玩款铜香炉 중국 명대 청동 향로

明代玉堂清玩款铜香炉 중국 명대 청동 향로 향로 높이 4.8cm 전체 높이 9.2cm "玉堂清玩"관지가 있는 明代말기의 청동 향로 작품 중국에서 청도 향로는 명대의 宣德(1426~1435)시기의 것을 최고 치며 선덕로爐라고 해서 지금까지 귀하게 여기며 고미술 수집의 중요한 품목 중 하나이다. 선덕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기술과 모양으로 , 다양한 관지로 모방품이 제작 되었는데 본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 중국 민국시기 유명한 수집가이자 저술가인 赵汝珍은 그 저작에서 玉堂清玩관지의 향로는 严嵩之子严东楼的字号,“玉堂清玩”铜器是严氏之炉。 라고 해서 엄숭(1480~1567)의 아들 엄동로의 자호이며 그 집안의 향로이다라고. 그 후 전문가들의 의견은 선덕시기 관지가 없는 향로를 100년이 지나서 엄씨 집안에서 관리하며..

明代 嘉靖 白釉刻龙青花海水纹玉壶春瓶명대 가정 청화 옥호춘병

明代 嘉靖 白釉刻龙青花海水纹玉壶春瓶 명대 가정 청화 옥호춘병 높이 30.4cm 명대자기로 가정 嘉靖(1522~1566) 년간 작품으로 백색바탕에 음각으로 4개의 발톱을 갖는 용을 그렸고 기물의 전체면에 청화로 해수면을 표현한 옥호춘병이다. 명대의 전형적인 청화자기이다. 병 전체가 하나의 바다라면 그 안에 용 한마리가 있는 셈이다. 명대의 가정嘉靖 시기는 재임기간이 45년에 이르는데 이 기간에 여러차례의 농민반란이 일어나고 전반적으로 국력은 쇠락하여 도자기 사업만을 따로 보면 그 때 '官搭民燒'제도 라는게 시행되는데 , 비용의 절감등을 위해 당시 관요는 제작의 설계와 전 단계들만 책임지고 실제 가마에 굽는 제작은 민요에 위탁하는 제도이다. 이런 제도는 후에 청대 강희에서도 실행했던 제도 이기도 하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