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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代吉州窑洒釉彩四耳盖罐 송대 길주요사이관

元代吉州窑洒釉彩四耳盖罐 송대 길주요사이관 높이 13.2cm 원대 길주요 사이관(귀가 네가 달린 뚜껑달린 항아리 ) 길주요는 경덕전으로 유명한 강서성안에 길안에 있는데 더 작은 지명을 따서 东昌窑동창요 、永和窑영화요라고 불리기도 한다. 길주요는 당대 말기부터 시작해서 북송 남송시기 최고의 전성기를 지나 원대 말까지 제작을 하게된다. 송대의 길주요는 8대명요에 꼽을정도로 큰 명성을 갖기도 했다. 원대에 들어서면서 쇠퇴를 하게 되는데 본 작품은 그 원대의 초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위의 작품과 같은 계열로 같은시기 각 박물관의 길주요 작품

元代 青花云龙纹高足杯 중국도자기 원대 청화 운용문 고족배

元代 青花云龙纹高足杯 중국도자기 원대 청화 운용문 고족배 높이 8.7cm 원대 (1271~1368) 고족배 고족배는 馬上盃 마상배라고도 하는데 실용성도 있고 독특한 미를 표현할 수도 있어 唐대때 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자기의 기형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각 시대의 특성에 맞게 독특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변형이 되고 문양도 시대적 특성을 담아 표현하였다. 원대자기에서 제일 중요하게 감상하는것이 청화靑花의 색인데, 청화백자는 중국도자기 사史에서 원대부터 시작이 되기도 했지만 전체 도자기 역사에서도 청화백자는 원대의 청화를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 여긴다. 청화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당시 아랍에서 수입된 원료의 사용과 또다른 하나는 당시 중국 현지 자체에서 조달한 것 인데 , 본 작품은 수입원료를 ..

宋代 耀州窑 孩儿枕 중국도자기 송대 요주요 아이모양 베개

宋代 耀州窑 孩儿枕 중국도자기 송대 요주요 아이모양 베개 길이 30.8cm 북송 (960~1127) 시기 요주요 요주요의 전성기는 오대(907~960)말기부터 북송 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요주요의 최고 걸작들은 모두 오대 말기에 제작이 되었는데 이 당시의 명품들은 다시 이후에 볼수 없을 정도로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후대의 많은 학자들은 아직까지 구명이 되고 있지 않은 전설속의 그 柴窯가 혹시 요주요가 아니었을까 하는 견해를 갖는데 아직까지 이의 견해가 다수 이기도 하다. 아래는 그 오대 요주요 작품 들 중 일부 오대가 무너지고 宋송이 들어서면서 점차적으로 요주요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사회가 혼란해 지고 일부 유능한 도공들은 새롭게 살길을 위해 흩어지게 되는데 그 중 일부는 당시의 고려로 이..

청자송(靑瓷頌)-이규보(李奎報 1168~1241)

청자송(靑瓷頌)-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 제13권에 제목 없이 ‘김 아무개가 녹자(고려청자) 술잔을 보고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운(詩韻)에 따라서 지었다’고 적혀 있다. 그 詩의 일부 낙목동남산(落木童南山) 나무를 베어 남녘산이 벗겨지고 방화연폐일(放火烟蔽日) 불을 지펴 연기가 해를 가리웠지 도산녹자배(陶山綠瓷杯)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 간선십취일(揀選十取一)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영연벽옥광(瑩然碧玉光)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기피청매몰(幾被靑煤沒)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초수정(玲瓏肖水精) 영롱하기 맑은 물을 닮고 견경적산골(堅硬敵山骨) 단단하기 바위와 맞먹네 내지연전공(迺知埏塡功)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를 사차천공술(..

고려시대 순청자-청자음각 회문베개

고려시대 순청자-청자음각 회문베개 青瓷阴刻回纹瓷枕 길이 29cm (변)높이 12.8cm 고려 11세기 전체 네면 모두 回紋으로 장식으로 했는데, 이 회문은 고려시대 음각 혹은 상감등 많은 자기에 표현되었던 당시 주요 문양 중의 하나이다. 회문은 당시 중국에서도 富贵不断头的一种纹样(부귀가 끊임 없이 반복되어 끝이 없다)라고 해서 민간에 유행하던 문양이었는데, 이 문양은 商代 周代 청동기 기물들에도 다양하게 사용이 되던 오래된 문양이다. 이의 뜻은 앞서 말한것과 같이 그리 단순 하지많은 않다. 민속신앙 혹은 도교 불교등의 종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오히려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양이다. 李奎報,『東國李相國集』 第 16卷 古律詩 綠瓷枕 이..

고려시대 청자연적-고려문인 이규보와 청자연적

고려시대 청자 연적-고려 문인 이규보와 연적 고려 12세기 상형청자 동자형 연적과 원숭이모양 연적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第8卷 古律詩 / 靑磁硯滴 이규보(李奎報, 1168~1241) 幺麽一靑童 緻玉作肌理 (요마일청동 치옥작기리) 曲膝貌甚恭 分明眉目鼻 (곡슬모심공 분명미목비) 競日無倦容 提甁供滴水 (경일무권용 제병공적수) 我本好吟哦 作詩日千紙 (아본호음아 작시일천지) 硯涸呼倦僕 倦僕佯聾耳 (연학호권복 권복양농이) 天喚猶不應 喉嘎乃始已 (천환유불응 후알내시이) 自汝在傍邊 使我硯日沚 (자여재방변 사아연일지) 何以報爾恩 愼特無碎棄 (하이보이은 신특무쇄기) 어느 한 청의동자(靑衣童子) 고운 살결 백옥 같구나. 허리 굽실거리는 모습 공손하고 얼굴도 눈매도 청수(淸秀)하구나 종일토록 게으른 태도 없어 물병 들고..

고려시대 청자 양음각 연화문 주자

고려시대 청자 양음각 연화문 주자 青瓷 陽陰刻莲花纹小注子 높이 9.1cm 고려 12세기 전반 연꽃을 양각으로 하고 그 안의 세밀한 선을 음각으로 하였다. 세개의 규석받침이 있고 약간의 유면 갈라짐 현상이 있고 유색이 약간 탁하다. 투명도가 덜 하다. 대나무 모양과 비교해서 유색은 덜 함이 있지만 기형의 안정감으로는 더한거 같다.

고려시대 청자 양인각 포도동자문완

고려시대 청자 양인각 포도동자문완 青瓷 阳印刻葡萄童子纹碗 높이 6.2cm 입구지름 14.8cm 12세기 전반기 이런 장식기법을 印刻(또는 陶範도범)인각이라 하는데 문양을 틀에 미리 만들어서 도장 찍듯이 (쉽게 molding)해서 양각 혹은 음각의 문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기법의 작품은 현존 작품들 중 그리 많지가 않아 많이 귀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런 도범으로 포도와 아이 문양을 넣어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였다. 아래는 같은 인각印刻작품으로 보물 1031호 청자양인각파어포련문접시(靑磁陽印刻波魚蒲蓮文접匙) 호암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국보 253호로 외벽은 상감으로 문양을 냈고 안쪽으로 인각印刻방식으로 문양을 냈다. 이름은 청자 양인각 연당초-상감 모란문 은구대접 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아래는..

고려시대 청자 연화당초문완

고려시대 청자 연화당초문완 青瓷莲花唐草纹碗 높이 4cm 입구지름 13.8cm 고려 12세기 전반 12세기 초 중반의 청자 전성기 때 작품으로 음각의 그림이 섬세하고 정교하다. 큰 기포가 유관으로 선명하게 확인가능하며 유면은 투명하다. 빙렬이 전현 발생되지 않았으며 유면 표면에 윤기가 났으며 생각되어지는 것 보다 더 묵직하다. 굽에 세개의 규석받침 흔적이 있다. 당시의 상등품 다완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