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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1127-1279)관요 양이병(南宋官窑)

갠하늘 2020. 11. 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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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1127-1279) 관요 양 이병(南宋官窑两耳瓶)

남송(1127-1279) 관요 양이병 (郊坛下官窑)

송대 오대 명 요 중의 하나인 관요에 대해서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 그렇지만 남송 시기의 관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규명이 되었고 단지 북송시기의 관요에 대해서만 여요와 관련하여 아직 논쟁이 분분하다. 

 

북송시기 관요에 대해서는 , "北宋官窑是北宋大观、政和间官府在汴京(今河南开封)设窑,称为官窑。"라는 고대 문헌 기술이 있다. "송대 대관 정화시기 변경(당시 수도)에 요를 설치 하였는데,이를 '관요'라 불렀다."

 

*大观(대관;1107-1110), 政和(정화;1111-1118):모두 북송의 마지막 황제 송 휘종 시기의 연호이다.

 

이 변경 관요와 여요(여 관요)와의 관계는 아직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임. 변경 여 요의 실물이 아직 공식적으로 없는 상태.

明初曹昭《格古要论》言:“官窑器宋修内司烧者土臃细润,色青带粉红,浓淡不一,有蟹爪纹紫口铁足,色好者与汝窑相类,有黑土者谓之乌泥窑,伪者皆龙泉所烧者,无纹路。”

명 대 초기(홍무시기) 조소의 유명한 저작《경고요론》에 있는 수내사 관요에 대한 기술"수내사 관요는 태질이 섬세하고 윤기가 흐른다.색에 분홍이 들어 있고 색에 농담이 있다.게집개문이 있고 자구철족이 있다.관요의 상등품은 여요와 같은 정도이고 태토가 검은 것으로 되어 있는것은 관요와 비슷하지만 용천요의 한 품종이고 관요의 특징인 유면 갈라짐이 관요와 다르다"

그 동안 관요에 대해서 고대 문헌의 기재 내용에 따라 아래와 같이 분류해 왔다.

"官窑分做两个地方,一为北宋的汴京官窑,一为南宋南迁后高宗在杭

州所另立的新窑杭州修内司官窑,亦称内窑。" "관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북송시기의 변경관요,다른 하나는 남쪽으로 천도(남송)후 고종이 항주에 새로 설립한 수내사관요(별칭;내요)." 이 중 북송시기의 변경관요에 대한 연구는 실물과 요지에 대한 실증이 없어 내용에 있어 진척이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북송 관요와는 다르게 남송관요에 대해서는 요지와 문헌자료들의 발굴로 많은 진척이 있어왔다. 

 

南宋《垣斋笔衡》 "后郊坛下别立新窑" “袭故京遗制” 남 송 시기의 저작 "원재필형"에도 보면 이미 교단하에 따로 새로운 요를 설립하여다는 내용이 있고, 옛날 북송시기의 북송관요의 만드는 기술을 계승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데,  대략 "남송시기 관요 수내사는 지금의 절강 항주 봉황산아래 북송시기 관요인 변경관요를 계승하였으며, 이를 수내사 관요라 부르고 그 요지는 지금의 항주 로호동 요지이다. 후에 교단하에 새로 관요를 설치하였는데, 이는 지금의 항주 거북이산이다. 이를 교단하 관요라 부르는데 , 그 요지는 아주 크고 광범위하다. 1956년 부터 발굴을 시작한 교단하 관요의 특징은, 기벽이 얇고 회색 갈색 흙새등 3색이 주를 이룬다.유약은 두껍게 시유하였다. 분청색유를 최고로 여기며 윤기가 흐르고 아름다운 옥과 같다.유면에는 많은 갈라짐이 있고 기물의 입구와 굽의 부분에는 유약이 없이 태토가 노출이 되기도 한다. 그 부분에 색이 회색 혹은 철색이 나타나 보통 "자구철족"이라 부른다. 기형은 아름답고 남송시기의 다양한 작품들과 비교하여도 우수한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南宋时置窑于修内司,在今浙江杭州凤凰山,沿袭旧制仿烧,称“修内司官窑”,这个窑的遗址即为今天杭州的老虎洞窑址。后于郊坛另设新窑,在今杭州乌龟山,称“郊坛下官窑”,窑址范围很大。1956年作了部分发掘。郊坛下官窑烧造的青瓷:胎薄,呈灰、褐、黑三色;施釉厚,以粉青色釉最佳,晶莹润泽,犹如美玉;釉面多有纹片;器口及底部露胎处,呈灰或铁色,称“紫口铁足”。造型优美,是南宋瓷器中的优秀作品。

郊坛下官窑 교단하관요 양이병 굽 

(참고)아래사진은 고궁박물관의 관요 굽 사진 

북경 고궁박물원 남송관요 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