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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6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문완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문완 粉靑沙器印花纹碗 퇴락한 상감청자 (象嵌靑瓷)에 그 연원을 두는 이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왕조의 기반이 닦이는 세종연간(1419~1450)을 전후하여 그릇의 질(質)이나 형태 및 무늬의 종류, 무늬를 넣는 기법[施文技法] 등이 크게 발전 ·세련되어 그 절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조선 도자공예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이게 된다. (참고)아래 사진은 국가박물관 소장 분청사기

고려시대 청자 음각 연화문 표형병

고려시대 청자 음각 연화문 표형병 高丽时代 青瓷暗刻莲花纹瓢形瓶 청자에서 표주박 모양의 기형은 많지는 않아도 어느정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손잡이가 있는 표형주자들이다. 본 작품과 같은 병의 형식은 아주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음각으로 그려진 문양은 연화문이라고 하는데, 당시 청자의 대표적인 문양중 하나이다. 비슷한 문양을 아래 참고사진에서 볼 수 있다 아래 첨부사진은 각 박물관의 참고 사진들,

“雨过天青云破处,这般颜色做将来”-1

제목의 이 글 “雨过天青云破处,这般颜色做将来”은 현재 시요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시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담은 문헌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이 글에 대한 대략적인 뜻은 "비 온 뒤 개인 하늘 구름을 뚫고 나온 그 빛의 색을 시요의 색으로 만들어라"라고 해석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몇 몇에서 몇 가지 의문을 제시한다. -글 자 "这" 가 원래는 "者"인데 者로서는 해석이 되지 않아 글을 잘 못 옮겼다고 하고 这로 쓴다. 실제 원문에는 "者"로 되어 있음. -원래 중국 고문古文에는 띄어쓰기가 없다. 이를 자신의 해석에 맞춰 띄어쓰기를 해서 해석을 고정시켰다. 이 둘을 감안해서 원문을 보면 충분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이 가능함을 배제할 수 없다. 원문; 《五杂俎》卷12记载:“(柴窑..

고려시대 연리문練里紋 청자 완碗과고觚

고려시대 연리문練里紋 청자 완碗과고觚 화고; 높이 6.5cm 입구지름 3.9cm 완; 높이 4.5cm 입구지름 8.5cm 모두 12세기 중반의 것으로 추정 실제 "색" 먼저 화고(花觚)는 중국의 商代와 周代의 청동기 기형을 따서 만든것인데 술병으로 사용되던 것으로 , 중국의 송대에서 도자기로 이 기형을 재현해서 尊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 고려에서는 이런 기형을 흔히 볼수 없는데 더군다나 이렇게 작은 기물로는 술잔으로도 사용이 어려워 당시 중국 송대에서와 같은 尊의 의미로 제작이 되어 상류층에서 감상용으로 제작이 되었을것으로 추측이 된다. 유약이 두꺼운 부분에 당시 청자에서 보이는 비색유가 은은하게 보인다. 전반적으로 기벽은 얇으며 유면도 얇게 시유되어 투명하며 전체적으로 빙렬이 나 있다. 아래는 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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