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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3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문완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문완 粉靑沙器印花纹碗 퇴락한 상감청자 (象嵌靑瓷)에 그 연원을 두는 이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왕조의 기반이 닦이는 세종연간(1419~1450)을 전후하여 그릇의 질(質)이나 형태 및 무늬의 종류, 무늬를 넣는 기법[施文技法] 등이 크게 발전 ·세련되어 그 절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조선 도자공예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이게 된다. (참고)아래 사진은 국가박물관 소장 분청사기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국화문옥호춘병

조선시대 분청사기인화국화문옥호춘병 粉青沙器印花菊花纹玉壶春瓶 높이 28.4cm 조선시대 15세기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고유섭(高裕燮)이 명명한 데서 유래되었다. 그릇 표면을 백토(白土)로 분장[화장]하여 전체적으로 백색을 띠며 유약을 바른 후의 색조는 회청색을 띠는 도자이다. 분청사기는 한국도자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청자의 맥락 위에 있으나 청자보다는 태토 내 철분의 함량이 적어 청자에 비해 색이 밝아지고 유약도 희어져 전체적인 색감은 밝은 회청색을 띤다. 14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중엽 사이에 생산되었고 15세기 전반 세종의 재위시기에 가장 다양하게 발전하여 전국에서 생산되었다. (분청사기인화문병: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의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분청사기 그릇의 형태는..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병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병 (青瓷镶嵌菊花纹瓶) 높이 18.9cm 13세기 말 고려 전성기때의 기형과 비교하여 배가 많이 들어가서 약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유면의 색은 흙색을 띄고 문양 장식에 있어서도 분청사기의 전형적인 특징인 도장을 찍듯이 인화문 기법을 사용한것으로 보아 상감청자 시대에서 분청사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유지질감의 유면과 국화문 상감의 장식기번은 원숙한 기술임을 보여준다. 이런류의 작품이 드물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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