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 /한국도자기

고려시대 청자상감 술병과 잔

갠하늘 2017. 6. 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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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청자상감 술병과 잔 镶嵌青瓷 酒壶和盏

청자상감 목단운학문주자  青瓷镶嵌牡丹云鹤纹注子   높이   29.4cm

 

운학문 대접 青瓷镶嵌云鹤纹碗                 높이   6 cm 입구지름 13.8cm

 

고려시대 술관 관련해서 , 이전 시대와 비교해서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당시 중국의  송대와

 

원대의 제조기술을 도입해서 그 동안 쌀 위주의 단순하고 원가가 높은 재료에서 다양하고 값싼

 

원료를 채용해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고려시대 술에 관한 문헌(고려사)에 보면 ,

 

고려 문종 때(1046년)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를 두어 빚었는데 청주와 법주 두 가지로 구분되어 질항아리에 넣고 명주로 봉하여 저장해 둔다 하였다.

고려 때에는 사찰이 여행자의 숙박지로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술을 판매하는 풍속이 있어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들이 발달 되었다.

현종(顯宗;1140년)때에는 그 폐단이 심하여 사찰에서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금하게 된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면서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는데, 이는 몽고의 침입(1274년)으로 소주 고리의 이용 방법이 도입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이런 술 제조기술의 발전과 당시의 고급 청자가 직접적인 관계는 없겠지만  민간에서 필요로 하는 생활자기 또한 발전했으리라 짐작을 할 수 있다. 이런 것과 별도로 당시 정권의 안정을 이룬 왕실과 최고 지배층에서 사용한 기물들로 봐서 호화롭고 사치스런 면이 있을 수 있으나, 그렇게 보기 보다는

당시 송대와 비교하여 청자 제조기술이  월등 했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래는 같은시기 중국의 술병 (관요와 민요)

 

 

 

 

술병과 술잔  모두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 중반의 것으로 판단되며 우수한 순청자(비색자기)의

 

질감을 유지한채 상감기법을 사용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술병 세부도

 

술잔 세부도

위의 마지막 사진 세부도
굽 사진

이사진을 보면 위의 술병의 학에서도 볼 수 있고 , 상감된 학 위에 유리가 깨져 들뜬 현상이 있는데  , 이는  이게 꼭 있어야 오래된 것은 아니겠지만 , 있으면 진품이라고 판단해도 될것같다.

이는 가짜를 만드는 기술로 될 수 있는게 아니고 그 만한 시간이 흘러야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중앙박물관 소장품 중 이런 현상의 작품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