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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214

大明宣德龙凤纹高足杯

大明宣德龙凤纹高足杯 대명선덕 용봉문 고족배 선덕년제(1425~1435) , 높이 8.4cm, 입구지름 8.9cm 관지와 약간의 무늬에 청화를 넣었으며 외부 전면에 용 과 봉황을 선명하게 양각으로 입혔다. 전체적인 기형은 엄정하며 관지는 관요로서의 기품이 있으며 용과 봉황의 문양은 이주 섬세하여 생동감이 넘친다. 색은 순백을 띄며 입구의 변은 날카로울 정도로 얇아 제작의 높은 기술을 실감할 수 있다. 그외 유면은 투명한 유리질감을 준다. 명대 초기의 선덕황제는 10년의 짧은 재임 기간이지만 도자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 그 중 고족배는 선덕시기의 대표적인 기형이라 할 수 있으며 후대의 황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이를 수집하기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으며, 그래서 지금의 고궁은 물론 많은 박물관에서..

北宋耀州窑刻花梅瓶

北宋耀州窑刻花梅瓶 송대 요주요 매병 높이 24.5cm 북송 시기 초기의 요주요 작품으로 최상급의 품질을 갖는 매병이라고 할 수 있다. 요주요의 최고 전성기는 오대시기(906~960)라고 할 수 있는데 오대가 무너지고 송나라(북송)가 들어서면서 여기 요지들의 도공들이 중국 각지로 흩어지게 되는데 그 일부의 도공들은 당시 월주요의 도공들과 더불어 우리의 고려로 들어가서 고려청자의 기반 을을 잡는데 일정정도 역할을 했을걸로 추정한다. 본 기물과 함께 아래의 사진자료들은 우리의 고려청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우선 아래는 오대시기의 요주요 작품들(요주요 박물관 소장) 아래는 오대이후 이어진 북송시기 박품들(각 박물관 소장품)

청자음각모란문사이항아리

청자음각모란문사이항아리(靑磁陰刻牡丹纹壺) 높이 뚜껑포함 18.9cm , 12세기 초엽 다른 느낌의 색상. 사이호란 네개의 귀가 달린 항아리란 뜻인데 당시 이런 유형은 다양하게 발견되는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기형으로 판단된다. 실제의 기물 색과 위 사진의 색에 일정정도 거리가 있는데 본래의 색을 사진으로 담아내기가 어렵다. 약간 녹색을 머금은 비색유라 할 수 있는데 , 사진으로 볼 수 있는 모양이나 그림 기형등의 특징외에 본 기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면에 빙렬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아래의 사진 자료 중에서도 호암미술관의 작품에는 빙렬이 없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아래는 본 기물관 비교할 수 있는 참고자료인데 순서대로 중앙박물관 리움미술관 일본 동양도자박물관의 소장품 들이다 그중 특히 중앙박물관의 상감청..

고려청자 음각 연꽃당초무늬 표주박모양병

고려청자 음각연꽃당초무늬 표주박모양병 ( 靑磁阴刻莲唐草纹葫芦瓶) 높이 14.7cm , 12세기의 것으로 추정 투명한 유면아래 선명한 음각 문양이 있고 유면은 큰 빙렬이 있다. 크기는 작지만 그림의 내용과 기형의 뜻은 많은 자손과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것으로 의미는 더할나위 없이 크고 만지면 옥을 만지는 듯하다.

고려 상감청자 운학문병

고려 상감청자 운학문병 (高丽 镶嵌青瓷 云鹤纹瓶) 높이 25.6cm , 12세기 중 후반 하늘에서 구름 속으로 네마리의 학이 내려오는 모양을 현실감 있게 형상화 한 작품 고려청자에서 많이 나타나는 학은 원래 두루미라고 불리며 우리의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는 새인데 , 예로부터 이 학의 고고한 기상은 선비의 이상적인 성품을 상징하여 왔으며, 장수 를 상징하는 대표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학의 의미는 우리 고려 뿐만아니라 고려와 같은 시기인 중국의 송대에서도 비상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도교와 함께 결부되어 신선이 타고 다니는 영물로 인식되었다. 아래 사진은 송대(북송) 마지막 황제인 송 휘종(1082.05.05—1135.06.05)이 그린 그림으로 중국의 국보(요녕성 박물관 소장)라고 ..

고려 상감청자 물고기문 병

고려 상감청자 물고기문 병 높이 17.2cm , 1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 상감 그림이 하늘의 구름과 학 그리고 바다의 파도와 물고기가 함께 그려져 있는데 보통 상감청자에서는 흔치 않는 그림 소재의 배합인데 한참 후의 분청사기 초기 작품(15세기 초)인 아래 사진자료에서도 같은 배합을 볼 수 있다. 보물 347호 분청사기 상감 물고기 무늬 매병 1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清代早期 青花 청대초기 청화 두점

清代早期 青花 청대 초기 청화 두점 清 顺治 人物故事图盖罐 청대 순치시기(1643~1661) 인물고사도 개관 청대의 첫번째 황제로 아직 체제 정비가 되지않고 통치기반이 공고하지 않은 상황으로 특별히 관지는 없지만 본 기물과 같은 류의 것을 보통 관요로 여긴다 . 청대의 경우 년호를 넣어 관요를 구별하는것은 두번째 황제인 강희 초기가 지나서야 "대청강희년제"와 같은 관지를 써서 관요를 구별하였다. 혼란했던 수십년간의 명대말기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수준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역시 청대 초기의 청화 세( 洗 ), ”康熙辛亥中和堂制”款人物故事图洗 강희 재임 10년(1671년)시기의 관요. 여기서 말하는 중화당은 원명원의 황제거주 궁을 말한다. 강희 재임 61년 중 10년차 까지도 아직 강희년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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