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 /柴窯(시요)연구

북송시대 차이요(시요)에 대한 인식

갠하늘 2020. 10. 26. 01:29
728x90
반응형

차이요는 954~960년 사이에 만들어진 걸로 여겨지는데,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북송 초기에 이미 차이요에 대한 문헌자료가 있다. 

 

北宋欧阳修《归田录》书中 “汝窑花觚”时写道:“柴氏窑色如天,声如磬,世所稀有,得碎片者,以金饰为器,北宋汝窑颇仿佛之,当时设窑汝州,民间不敢私造,今亦不可多得。

谁见过时

似,官局造无私。

粉翠胎金华胰光暗滋,

弹声戛玉,须插好花枝。

晚霞(만하);저녁노을, 이는 차이요에 대한 현상으로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송대  유명한 학자이자 관원이었던 구양수라는 사람이 《귀전록》이라는 책에서"여 요 화고"라는

여요 작품을 보면서 감상을 하고 평을 하는데 그 과정에 차이요와 비교하며 감상을 하는 내용이다. 

 

구양수라는 사람은 1007년 출생하여 107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실제 위의 귀전 록이라는 책은 실존하며 위의 내용이 기재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차이 요가 아니라 여요에 있다. 왜냐하며 지금까지 송대의 5대 명요중 최고는 여요이며  그 여요는 북송시기 말인 휘종(재위: 1100-1126년) 연간에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제작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인데 그 보다 이미 최소 30여 년 전에 여 요가 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내용은 여기서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차이요에 대한 실체를 알기 위한 내용만 확인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위 내용은 몇 글자 안 되는 문장과 시로 이루어졌는데, 이글이 발표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완벽하게 해석이 되지 않고, 읽는 이 별로 모두 다르게 해석이 되고 있다. 여러 해석들 중 차이요 실물을 보고 쓴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해석 본이 정확하리라 여겨지지만 그 게 어느 것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위의 글과 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차이요는 어떤 모양과 색이고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또 차이 요의 원료와 특징은 어떠하며 얼마나 귀 한지 등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앞으로 하나하나 분석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차이 요가 전설상의 기물이 아니며 실재했었던 혹은 실재한다는 근거로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위의 문헌 기재 내용이 가장 오래된 자료라면 , 이 보다 600년이 지나 차이요를 실제 보고 감상평을 쓴 아래의 글을 보면 더 생동감이 있고 어느 정도 그 윤곽도 그려볼 수 있다.

清代刘体仁《七颂堂识小录》中,记其亲眼所见:“柴窑无完器, 近复稍稍出焉, 布庵见示一洗, 圆而椭, 面径七寸, 黝然深沉, 光色不定,‘雨过天青’未足形容, 布庵曰:‘予目之为绛青’。

”청대 초기 류 본인(1617-1676)의 저서 《7 송당식 소록》에

*绛青(강청);

绛(강):진한 홍색의 뜻도 있지만 강희 사전에 보면  "古謂之纁", 纁谓之绛

        즉 옛날에는 纁(훈)과 같은 말로 쓰였다.

纁(훈):강희 사전 "黄而兼赤为。落日的余辉的色泽。" 혹은 "黄昏的阳光", "残留的光辉"

     "황색이 홍색을 만난 모양이 훈인데, 일몰의 순간 얼마 남지 않은 빛의 색조" 혹은 "황혼의 양광", "일몰의 강렬한 빛" 

青(청):강희 사전 "【說文】東方色也。【釋名】靑,生也。象物之生時色也", 즉 단순히 푸른색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모양 혹은 하늘의 모양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색이 아니라 모양 혹은 형태로 생각하면 그 실체를 그려 볼 수 있다. 

차이 요의 가장 큰 특징인 “青如天”을 푸르기가 하늘색과 같다고 해석하는 것은 차이요의 실체를 찾는데 큰 오류라고 할 수 있다. 

 

绛青(강청)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아래의 그림과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绛青(강청)현상, 혹은 纁(훈)

차이요 관련 고대 문헌에서는 보통 이런 현상을 강청이라는 말 이외에도 다양하게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