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 /柴窯(시요)연구

시요의 유약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갠하늘 2020. 10.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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柴窑(시요)의 유약은 어떻게 만들었길래 그렇게 특별한 도자기로 여겨지는가? 

 

오 대 (907-959) 청자 천청유 세 
五代天青釉古洗

 

清无名氏《南窑笔记》载:“柴窑, 周显德年间宝库火,玻璃、玛瑙、诸金石, 烧结一处, 因令作釉。其釉色青如天、明如镜、薄如纸、声如磬。其妙四,如造于汝州,瓷值千金。”

 

청 대 무명 씨가 지은 《남요 필기》라는 책에 차이요(시요)에 대한 중요한 글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시요는 후주 세종 년간 보석 창고에 있었던 유리 마노 여러 금과 옥을 불로 가공하여 원하는 부분에 부착을 하였는데, 지금에서 보면 그게 하나의 유약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

 

 

五代 古洗

 

北宋欧阳修的《归田录》书中 “汝窑花觚”时写道:“柴氏窑色如天,声如磬,世所稀有,得碎片者,以金饰为器,北宋汝窑颇仿佛之,当时设窑汝州,民间不敢私造,今亦不可多得。

谁见柴窑色 天青雨过时。

汝窑磁较似,官局造无私。

粉翠胎金洁,华胰光暗滋,

旨弹声戛玉,须插好花枝。”

 

북송 오양수의 저작에 있는 시요 유관 글과 詩에서  시요 유약 관련 내용,

饰为器, 금으로 기물을 둘렀는데,,,,,不敢私造,  민간에서는 시도할 수도 없는 그런 제작방식으로,, 官局造无私이것도 같은 말로, 관요에서나 만들지 민간에서는 이렇게 만들 수 없었다.

粉翠胎金洁,   전형적인 천 청유에 금으로 장식을 하여,,,,,,,

라는 내용이 있다. 

 

이런 제작방식은 중국의 초기 청자에서부터 현대인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 제작 방식이다. 

 

물론 오대 이후에 이를 계승한 제작 방식이 있긴 한데, 송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 그렇지만 송대 오대 명요에는 속하지 못했던 鈞균요이다. 보통 요변이라고 하는데, 유약에 적절한 철의 성분을 넣어 고온에 굽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양이 나오도록 하는 제작 방식인데, 이를 균요 요변이라고 불렀다. 

 

钧窑玫瑰紫釉葵花式花盆托,북경 고궁 소장 송대 균요 장미보라색규화식 화분탁 

 

차이요를 계승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차이 요의 금 은 보석 등을 사용하여 만든 유약과는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