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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한국도자기 87

고려청자 와 송대여요

고려청자 와 송대여요 高麗靑瓷 와 宋代汝窯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비색 (翡色)순청자(素文青瓷)와 중국 宋代의 5대 名窯 중 최고로 여기는 汝窯여요를 소개하고 두 나라의 같은시기 최고 명품들을 비교하고 모두가 궁금해 하는 , 고려와 송나라의 것 중 어떤게 더 아름답고 혹은 더 뛰어난지 ...... ,,,,, 고려청자 순청자(소문청자) 침형병 다음은 北宋汝窑天青釉洗북송 여요 천청유 세 고려청자와 여요 위의 고려청자는 광구병 혹은 침형병이라고 불리는데 광구병은 중국에서 그렇게 부르고 침형병은 일본에서 그렇게 부르는데 광구병은 입구가 넓다는 뜻이고 침형병은 모양이 다듬잇돌(砧)같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우리는 그냥 병이라고 부른다. 높이 18.2cm 입구 지름 9.8cm 고려 純靑瓷 甁 12세기 전반기 같은 유..

청자상감 국화접문 통형배

청자상감 국화접문 통형배(青瓷镶嵌菊花蝶纹筒形杯) 높이 9.4cm 고려 12세기 이런 통형배(잔)은 당시에 많이 사용되던 잔의 형태로 국화문이 상감으로 그려져 있는데 특이하게 당시에도 귀했던 나비문양도 그려져 있다. 규석받침 자국 세개가 남아 있으며 단지 유면이 많이 두껍고 투명도가 낮아 원래의 면모에 부족함이 있으며 잔 안에 잔류물들이 있어 약간의 흠이 있지만 기형 문양 규석받침 유색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12세기 상감청자 전성기때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고려상감 청자운학모란국화문표형병

고려상감 청자운학모란국화문표형병(靑磁象嵌雲鶴牡丹菊花文梅甁) 瓢形甁(표형병)은 조롱박 혹은 호루葫蘆의 형태를 말한다. 높이 30.8cm 13세기 후반으로 추정 윗 부분에 구름과 학 국화문을 상감했고 아래 부분에 국화와 모란문을 크게 상감으로 문양을 넣었다. 전체적으로 옥의 촉감을 갖고 있으며 은은한 푸른색이 감도는 투명한 유면으로 작고 세밀한 빙렬이 전체에 드러나 있다. 투명하고 은은한 푸른색은 상감의 문양을 선명하게 하고 몽롱한 느낌을 갖게해준다.

고려시대 원숭이모자 모양 청자연적

고려시대 원숭이모자 모양 청자연적(靑磁 母子猿形 硯滴) 높이 10cm, 12세기 전반기 비색 상형청자 원숭이 모양 연적 간송 미술관의 국보 270호와 비교해서 같은 기형인데 몸체 문양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고 바닥의 제작 방식에서 박물관의 것은 내화토를 사용해서 구웠고 본 기물은 규석받침을 사용해서 구운 차이가 있다. 그리고 원숭이의 꼬리 처리가 국보 270호는 표현을 안 했는데 , 본 기물은 등 뒤에 꼬리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외 유면의 색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모두 고려 초기의 비색 자기 범주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본 기물의 몸통과 표현이 같은 문양 의 예(중앙박물관) 아래는 간송 미술관의 국보 270호

고려시대 청자 잔

고려시대 청자 잔(靑瓷 盞) 원래는 탁(받침)이 함께 있는 잔탁(盞托)인데 잔만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것으로 유면의 색은 어둡지만 전반적으로 양호한 품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색 잔은 고려와 같은 시기의 중국 송대 湖田窑호전요의 影青釉 영청유 잔이다. 역시 잔탁인데 잔만 남아 있다. 같으면서 다른, 아니면 다르면서 같은 느낌의 잔 이다. 아래는 한국과 중국 각 박물관의 관련 기물들의 비교 사진자료들이다

고려시대 청자 석류모양연적

고려시대 청자 석류모양연적 고려시대 12세기 높이 7.2cm 석류는 풍요를 상징합니다.수수한 모습으로 별로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가을날 익을 대로 익어서 스스로 붉은 배를 갈라 속을 터뜨리면 그 속에 진주보다도 더 영롱한 붉은 알을 수없이 배태하고 있음을 목도합니다. '평범 속의 비범한 풍요'가 바로 석류의 함의(含義)라 합니다. 한국에는 석류가 고려 초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익어서 배가 갈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형상화 했는데 잎과 함께 손잡이 물 따르는곳까지 현실감있게 표현 되었다. 기능적으로도 손에 쥐기 편한 손잡이와 실제 물을 넣어 따르는데도 편리와 기능성이 있다. 유면의 색은 전형적인 비색이라할 수 없지만 아주 투명한 유리질감을 보여주며 옥의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복부에 음각선으로..

고려시기 청자양각죽절문주자

고려시기 청자양각죽절문주자(青瓷阳刻竹节纹注子) 전체높이 9.4cm , 작은 주전자 , 12세기 전반 대나무를 쪼개서 맞춘 모양의 몸체에 대나무 모양을 한 귀때부리와 손잡이가 달려있다. 뚜껑의 선이마 문양도 몸체의 그것과 그대로 이어지며 뚜떵 꼭지와 손잡이 윗부분에 구멍을 내어 서로 끈으로 이을 수 있게 고리가 달려있다. 이러한 죽절형의 기형은 강진 사당리 가마터의 파편에 많이 보이는데 12세기 전반의 강진 사당리 작품으로 판단된다. 유면은 옅은 푸른색을 머금은 초기청자의 비색을 보이며(실제는 사진보다 더 푸른색에 가깝다) 미세한 기포가 있고 빙렬이 있지만 투명한 유리질감을 보인다. 굽 바닥에는 세개의 규석 받침을 사용하였으며 뚜껑에는 내화토 빚음눈 자국 흔적 세가가 보인다. 아래는 각 박물관의 주전자들인..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병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병 (青瓷镶嵌菊花纹瓶) 높이 18.9cm 13세기 말 고려 전성기때의 기형과 비교하여 배가 많이 들어가서 약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유면의 색은 흙색을 띄고 문양 장식에 있어서도 분청사기의 전형적인 특징인 도장을 찍듯이 인화문 기법을 사용한것으로 보아 상감청자 시대에서 분청사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유지질감의 유면과 국화문 상감의 장식기번은 원숙한 기술임을 보여준다. 이런류의 작품이 드물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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