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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한국도자기 87

청자송(靑瓷頌)-이규보(李奎報 1168~1241)

청자송(靑瓷頌)-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 제13권에 제목 없이 ‘김 아무개가 녹자(고려청자) 술잔을 보고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운(詩韻)에 따라서 지었다’고 적혀 있다. 그 詩의 일부 낙목동남산(落木童南山) 나무를 베어 남녘산이 벗겨지고 방화연폐일(放火烟蔽日) 불을 지펴 연기가 해를 가리웠지 도산녹자배(陶山綠瓷杯)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 간선십취일(揀選十取一)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영연벽옥광(瑩然碧玉光)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기피청매몰(幾被靑煤沒)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초수정(玲瓏肖水精) 영롱하기 맑은 물을 닮고 견경적산골(堅硬敵山骨) 단단하기 바위와 맞먹네 내지연전공(迺知埏塡功)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를 사차천공술(..

고려시대 순청자-청자음각 회문베개

고려시대 순청자-청자음각 회문베개 青瓷阴刻回纹瓷枕 길이 29cm (변)높이 12.8cm 고려 11세기 전체 네면 모두 回紋으로 장식으로 했는데, 이 회문은 고려시대 음각 혹은 상감등 많은 자기에 표현되었던 당시 주요 문양 중의 하나이다. 회문은 당시 중국에서도 富贵不断头的一种纹样(부귀가 끊임 없이 반복되어 끝이 없다)라고 해서 민간에 유행하던 문양이었는데, 이 문양은 商代 周代 청동기 기물들에도 다양하게 사용이 되던 오래된 문양이다. 이의 뜻은 앞서 말한것과 같이 그리 단순 하지많은 않다. 민속신앙 혹은 도교 불교등의 종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오히려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양이다. 李奎報,『東國李相國集』 第 16卷 古律詩 綠瓷枕 이..

고려시대 청자연적-고려문인 이규보와 청자연적

고려시대 청자 연적-고려 문인 이규보와 연적 고려 12세기 상형청자 동자형 연적과 원숭이모양 연적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第8卷 古律詩 / 靑磁硯滴 이규보(李奎報, 1168~1241) 幺麽一靑童 緻玉作肌理 (요마일청동 치옥작기리) 曲膝貌甚恭 分明眉目鼻 (곡슬모심공 분명미목비) 競日無倦容 提甁供滴水 (경일무권용 제병공적수) 我本好吟哦 作詩日千紙 (아본호음아 작시일천지) 硯涸呼倦僕 倦僕佯聾耳 (연학호권복 권복양농이) 天喚猶不應 喉嘎乃始已 (천환유불응 후알내시이) 自汝在傍邊 使我硯日沚 (자여재방변 사아연일지) 何以報爾恩 愼特無碎棄 (하이보이은 신특무쇄기) 어느 한 청의동자(靑衣童子) 고운 살결 백옥 같구나. 허리 굽실거리는 모습 공손하고 얼굴도 눈매도 청수(淸秀)하구나 종일토록 게으른 태도 없어 물병 들고..

고려시대 청자 양음각 연화문 주자

고려시대 청자 양음각 연화문 주자 青瓷 陽陰刻莲花纹小注子 높이 9.1cm 고려 12세기 전반 연꽃을 양각으로 하고 그 안의 세밀한 선을 음각으로 하였다. 세개의 규석받침이 있고 약간의 유면 갈라짐 현상이 있고 유색이 약간 탁하다. 투명도가 덜 하다. 대나무 모양과 비교해서 유색은 덜 함이 있지만 기형의 안정감으로는 더한거 같다.

고려시대 청자 양인각 포도동자문완

고려시대 청자 양인각 포도동자문완 青瓷 阳印刻葡萄童子纹碗 높이 6.2cm 입구지름 14.8cm 12세기 전반기 이런 장식기법을 印刻(또는 陶範도범)인각이라 하는데 문양을 틀에 미리 만들어서 도장 찍듯이 (쉽게 molding)해서 양각 혹은 음각의 문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기법의 작품은 현존 작품들 중 그리 많지가 않아 많이 귀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런 도범으로 포도와 아이 문양을 넣어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였다. 아래는 같은 인각印刻작품으로 보물 1031호 청자양인각파어포련문접시(靑磁陽印刻波魚蒲蓮文접匙) 호암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국보 253호로 외벽은 상감으로 문양을 냈고 안쪽으로 인각印刻방식으로 문양을 냈다. 이름은 청자 양인각 연당초-상감 모란문 은구대접 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아래는..

고려시대 청자 연화당초문완

고려시대 청자 연화당초문완 青瓷莲花唐草纹碗 높이 4cm 입구지름 13.8cm 고려 12세기 전반 12세기 초 중반의 청자 전성기 때 작품으로 음각의 그림이 섬세하고 정교하다. 큰 기포가 유관으로 선명하게 확인가능하며 유면은 투명하다. 빙렬이 전현 발생되지 않았으며 유면 표면에 윤기가 났으며 생각되어지는 것 보다 더 묵직하다. 굽에 세개의 규석받침 흔적이 있다. 당시의 상등품 다완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高丽镶嵌青瓷 牡丹唐草纹壶 높이 20.8cm 13세기 후반으로 추정 아래는 본 기물과 거의 같은 작품으로 일본의 개인 소장품이라고 함. 이름은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이며 높이 22.1cm 로 공개된 하나의 작품 두 종류의 사진 13세기로 추정 이 작품은 일본의 개인 소장품으로 더 이상의 설명과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고려시대 청자로 보기 드문 유형의 항아리 기형으로 ,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는 민간에 까지 많이 좋아했던 , 지금도 달 항아리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는 그런 기형이다. 12세기 전성기때의 청자 상감작품들과 비교해서 (흑 백)상감과 유면에 뚜렷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안정된 기형과 유면의 색 , 그리고 전반적인 그림의 배열등으로 보아 ..

조선시대 철화백자 도수문(벼이삭)반구병

철화백자 도수문반구병 铁花白瓷稻穗紋盤口瓶 그림은 여러 설이 있으나 벼 이삭을 표현 한 것이며 높이 20.8cm 17세기 전반 철화백자 도수문반구병 (도수문은 벼이삭을 말하고 반구는 병의 입구가 접시를 닮았다는) (참고) 비슷한 작품의 사진 자료 크기와 기형 그림 모두 같은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 같은 요지의 작품으로 판단되며 그림은 정면과 후면 각각 도수문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서 표현한 벼이삭은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의미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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