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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214

登封程窑 송 대 등봉 정요(청요)반

登封程窑 송 대(960-1279) 등봉 정요반(盘) 허베이의 정요定窑백자와 구별되는 것으로 중국에서 등봉정요는 chengyao청요로 불리고 허베이 백자 정요는 dingyao(딩요)로 발음된다. 고대 하남성의 등봉시에는 약 40여 개의 큰 요지들이 있었는데, 그중 등봉요를 비롯한 몇 개의 요는 당 송시기 유명해서 황실에 공납을 하기도 하였다. 그중 청요는 균요와 여요 계열의 작품을 만들어 황실에 공납하였다. 이 청요가 발굴되기 전에는 균요계열은 모두 우주의 균요로 분류하였고, 본 작품과 같은 여요 계열은 허난 성의 여러 여요 계열로 분류하였다. 하지만 여요로 분류하는데 기존의 여러 여요계열의 요지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 많아 선 뜻 어느 요지로 분류하는데 주저함이 있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이 등봉 청요에서 ..

종이처럼 얇다(?)'薄如纸',

시요를 연구하는 학자에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꼽는다면 아마 薄如纸 (박여지)라는 말 일 것이다. 이 말은 明张应文在其《清秘藏》中有记:“论窑器,必曰柴、汝、官、哥、定,柴不可得矣,闻其制云:‘青如天,明如镜,薄如纸,声如磬’。此必亲见,故论如是。其真余向见残器一片,制为绦环者,色光则同,但差厚耳。” 명 대의 한 저술에 나오는 ‘青如天,明如镜,薄如纸,声如磬’ 시요의 네 가지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데, 보통 "시요는 두께가 종이처럼 아주 얇은 기물이다"라고 해석이 되는 단어이다. 사실 이 세 글자 때문에 지금 시 중에 보이는 시요 방품들이 모두 얇은 기물들 뿐인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말은 지금의 연구자들 뿐 아니라 고 대의 연구자나 문인들도 모두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던 말이며 , 지금도 실물이 없는 상황에서 뭐..

晚霞(만하;저녁 노을),

香祖笔记(清)王士禛 “常见一贵人买得柴窑碗一枚,其色正碧,流光四照,价馀百金。” 청대 한 문인의 시요 관련 저술에 기재된 내용으로, "자주 뵙던 지체 높으신 한분이 시요 완 한 점을 구입하였는데, 그 모양은 벽옥 색인데, 발산되는 광선이 사방을 뒤덮는다. 그 가격은 백금으로도 부족하였다". 시요와 관련하여 송 대 때 부터 민국 시기까지문헌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내용들은 다양하다. 시요의 역사성을 얘기하기도 하고 작품 감상을 하기도 하고 시요만의 고유한 특징들을 기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용들에 대한 현대적 의미들을 해석하는 데는 관련 학자나 독자들 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시요 작품에 대한 공인된 실물이 없고 시요에 대한 요지 발굴이 없어 글 만으로 내용을 형..

류광일채“流光溢彩”、광망탈목“光芒夺目”、、、

류광일채“流光溢彩”、광망탈목 “光芒夺目”、보영 사목광“宝莹射目光”, 차이요(시요) 관련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들인데, 모두 차이 요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나오는 문구들이다. 문구들은 쓰는 이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표현하는 내용들은 모두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아래와 같은 사진들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도자기와 이런 현상을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많은 이들은 그 저 신화이거나 전설일 뿐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차이요 자기는 그 냥 아름다운 자기가 아니라 주 세종의 사상이자 국가 운영 철학이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청 말 민국시기의 한 저술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由于柴窑瓷的釉层折射出来的光芒可以与金刚石的耀眼光芒相媲美,而备受追捧,成为瓷器历史上的巅峰之作。차이 요의 유면..

송대(960-1279) 요주요耀州窑

송대(960-1279) 요주요耀州窑 요주요는 송대 5 대 명 요와 더불어 여섯 번째로 꼽히는 큰 명성을 갖고 있다. 요주요는 당 대때부터 황실에 공납을 하는 등 일찍이 명성을 떨쳤다. 송대에 최고 절정기를 맞는다. 요주요는 지금의 협서성 동천 시 황보 전(陕西省铜川市的黄堡镇)에 있는데, 당 송 시기에는 요주 관할지역이라 요주요라 불린다. 당 송 시기 북방지역의 청자를 대표하는 요지라고 할 수 있다. 요주요에서는 청자 외에도 백유 흑유 청유 갈색유 녹유 삼채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神宗元丰(1078-1085)至徽宗崇宁(1102-1106)的三十来年间,曾为朝廷烧制贡瓷。 역사 문헌에 따르면 "북송시기 신종 원풍(1078)부터 휘종 숭녕(1106)까지 약 30여 년간 황실에 공납을 했다"는 기록..

송대 여요-鲁山段店窑

송대 여요-鲁山段店窑노산 단점요 송대 여요라고 하면 여주의 청량사 요지 작품을 말해 왔는데, 후에 허난 성 여주 부근의 여러 요지에서 발굴을 통해 여요 계열의 작품을 확인하고 여요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은 여주 청량사외에 장 공항 요지 문묘 요지 동구 요지 림여요 노산 단점 요지 등에서 여 요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아래는 노산단점요(鲁山段店窑)관련 사진자료 노산 단점 요는 당대에는 흑 유화자로 유명했었고, 당대에 이미 관요의 역할을 수행했었고, 송 대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유형의 청자를 제작하였는데 송 대 중기부터 지금 여요라고 부르는 여요 계열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지금 송대 오대명요의 여요는 북송 말기인 휘종(1100-1126년) 연간에 제작된 것을 말하는데, 노산 단점 요의 여요는 이..

남 송 詩人 章甫《古洗》

《古洗》 年代:宋 作者:章甫 *章甫;1125-1185, 남송 시기 유명한 문인으로 많은 詩를 남겼다 古人不可見,古物亦無幾。*예전 사람들도 볼 수가 없었던 이 《고세》, 이 옛 물건은 신묘하기가 이를 데 없다. 今朝雙眼明,乃識漢時洗。 規模簡而質,彷彿古君子。 年深土銷蝕,薄處僅如紙。 篆名可意逆,依稀辨雙鯉。 傳寶今幾代,是閲人多矣。 我生頗好古,摩挲不能已。 悠然起遐思,俗物一何鄙。 *이 詩가 차이 요를 노래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 시의 내용과 고대 문헌상의 차이 요에 대한 내용과 부합하는 내용이 많고, 본 기물과도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본 작품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시인이 쓴 다른 시에서도 비슷한 작품이 몇 개 더 있다. 고 도자기의 기물들 중 위와 같은 형식의 자기를 보통 洗(세)라고 부른다...

남송(1127-1279)관요 양이병(南宋官窑)

남송(1127-1279) 관요 양 이병(南宋官窑两耳瓶) 송대 오대 명 요 중의 하나인 관요에 대해서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 그렇지만 남송 시기의 관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규명이 되었고 단지 북송시기의 관요에 대해서만 여요와 관련하여 아직 논쟁이 분분하다. 북송시기 관요에 대해서는 , "北宋官窑是北宋大观、政和间官府在汴京(今河南开封)设窑,称为官窑。"라는 고대 문헌 기술이 있다. "송대 대관 정화시기 변경(당시 수도)에 요를 설치 하였는데,이를 '관요'라 불렀다." *大观(대관;1107-1110), 政和(정화;1111-1118):모두 북송의 마지막 황제 송 휘종 시기의 연호이다. 이 변경 관요와 여요(여 관요)와의 관계는 아직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임. 변경 여 요의 실물이..

송 대 여요 천청유 완(宋汝窑天青釉碗)

송 대 여요 천 청유 완(宋汝窑天青釉碗) 송 대 여요는 오 대 명 요의 첫 번째로 꼽힌다. “青瓷之首,汝窑为魁”청자의 첫 번째로 여요를 꼽는다. 明代的曹昭在《格古要论》:“汝窑器,出北地,宋时烧者。淡青色,有蟹爪纹者真,无纹者尤好,土脉滋媚,薄甚亦难得。” 명 대 조소의 저작 《격고요론》에 여요에 대한 글이 있는데, 고대 문헌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은"여요는 송때 북쪽에서 만들었다. 색은 담청색이고 게 집개 문 이 있으면 진품이고 아무 무늬가 없으면 더 좋은데, 유면은 윤기가 있고 기벽이 얇은 것은 얻기가 아주 어렵다". 직역하면 대략 이런 정도이지만, 자세하게 들어가면 여요에 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으며, 여요는 어떠하며 어떤 특징을 갖고 있고 진품 가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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