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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柴窯(시요)연구 18

晚霞(만하;저녁 노을),

香祖笔记(清)王士禛 “常见一贵人买得柴窑碗一枚,其色正碧,流光四照,价馀百金。” 청대 한 문인의 시요 관련 저술에 기재된 내용으로, "자주 뵙던 지체 높으신 한분이 시요 완 한 점을 구입하였는데, 그 모양은 벽옥 색인데, 발산되는 광선이 사방을 뒤덮는다. 그 가격은 백금으로도 부족하였다". 시요와 관련하여 송 대 때 부터 민국 시기까지문헌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내용들은 다양하다. 시요의 역사성을 얘기하기도 하고 작품 감상을 하기도 하고 시요만의 고유한 특징들을 기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용들에 대한 현대적 의미들을 해석하는 데는 관련 학자나 독자들 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시요 작품에 대한 공인된 실물이 없고 시요에 대한 요지 발굴이 없어 글 만으로 내용을 형..

류광일채“流光溢彩”、광망탈목“光芒夺目”、、、

류광일채“流光溢彩”、광망탈목 “光芒夺目”、보영 사목광“宝莹射目光”, 차이요(시요) 관련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들인데, 모두 차이 요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나오는 문구들이다. 문구들은 쓰는 이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표현하는 내용들은 모두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아래와 같은 사진들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도자기와 이런 현상을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많은 이들은 그 저 신화이거나 전설일 뿐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차이요 자기는 그 냥 아름다운 자기가 아니라 주 세종의 사상이자 국가 운영 철학이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청 말 민국시기의 한 저술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由于柴窑瓷的釉层折射出来的光芒可以与金刚石的耀眼光芒相媲美,而备受追捧,成为瓷器历史上的巅峰之作。차이 요의 유면..

남 송 詩人 章甫《古洗》

《古洗》 年代:宋 作者:章甫 *章甫;1125-1185, 남송 시기 유명한 문인으로 많은 詩를 남겼다 古人不可見,古物亦無幾。*예전 사람들도 볼 수가 없었던 이 《고세》, 이 옛 물건은 신묘하기가 이를 데 없다. 今朝雙眼明,乃識漢時洗。 規模簡而質,彷彿古君子。 年深土銷蝕,薄處僅如紙。 篆名可意逆,依稀辨雙鯉。 傳寶今幾代,是閲人多矣。 我生頗好古,摩挲不能已。 悠然起遐思,俗物一何鄙。 *이 詩가 차이 요를 노래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 시의 내용과 고대 문헌상의 차이 요에 대한 내용과 부합하는 내용이 많고, 본 기물과도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본 작품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시인이 쓴 다른 시에서도 비슷한 작품이 몇 개 더 있다. 고 도자기의 기물들 중 위와 같은 형식의 자기를 보통 洗(세)라고 부른다...

시요의 유약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柴窑(시요)의 유약은 어떻게 만들었길래 그렇게 특별한 도자기로 여겨지는가? 清无名氏《南窑笔记》载:“柴窑, 周显德年间宝库火,玻璃、玛瑙、诸金石, 烧结一处, 因令作釉。其釉色青如天、明如镜、薄如纸、声如磬。其妙四,如造于汝州,瓷值千金。” 청 대 무명 씨가 지은 《남요 필기》라는 책에 차이요(시요)에 대한 중요한 글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시요는 후주 세종 년간 보석 창고에 있었던 유리 마노 여러 금과 옥을 불로 가공하여 원하는 부분에 부착을 하였는데, 지금에서 보면 그게 하나의 유약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 北宋欧阳修的《归田录》书中 “汝窑花觚”时写道:“柴氏窑色如天,声如磬,世所稀有,得碎片者,以金饰为器,北宋汝窑颇仿佛之,当时设窑汝州,民间不敢私造,今亦不可多得。谁见柴窑色 天青雨过时。汝窑磁较似,官局造无私。粉翠胎金..

중국 오 대 세종 柴 世宗(柴荣)

중국의 역사에서 오대라고 하면 907년에 당나라라고 멸망하고 생긴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后梁、后唐、后晋、后汉和后周) 다섯 왕조(907~960)를 말하며, 그 왕조에는 10개의 나라(정권)가 (902-979) 군웅할거를 하고 있었는데, 이 시대를 오대 10국 시대라고 부르며 간략히 오대라고 부른다. 이후960년에 송의 태조가 되는 조광윤에 의해 이 오대10국이 멸망하고 새로 통일하여 단일한 국가가 성립되었는데, 그게 宋이다. 후에 이 송도 멸망하여 남송이 되는데, 남송이 되기까지의 기간을 후대에는 북송이라고 부른다. 차이요와 관련하여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할 시기는 이 오 대 왕조 중에서 마지막 황제였던 후주의 두 번째 황제인데, 그 가 바로 오 대 시기 후주의 두 번째 황제인 후주 세종 柴荣(..

북송시대 차이요(시요)에 대한 인식

차이요는 954~960년 사이에 만들어진 걸로 여겨지는데,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북송 초기에 이미 차이요에 대한 문헌자료가 있다. 北宋欧阳修《归田录》书中 “汝窑花觚”时写道:“柴氏窑色如天,声如磬,世所稀有,得碎片者,以金饰为器,北宋汝窑颇仿佛之,当时设窑汝州,民间不敢私造,今亦不可多得。 谁见柴窑色 天青雨过时。 汝窑磁较似,官局造无私。 粉翠胎金洁,华胰光暗滋, 旨弹声戛玉,须插好花枝。” 송대 유명한 학자이자 관원이었던 구양수라는 사람이 《귀전록》이라는 책에서"여 요 화고"라는 여요 작품을 보면서 감상을 하고 평을 하는데 그 과정에 차이요와 비교하며 감상을 하는 내용이다. 구양수라는 사람은 1007년 출생하여 107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실제 위의 귀전 록이라는 책은 실존하며 위의 내용이 기재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

차이요 연구 현황,

도자기의 황제로 여겨지는 차이요, 지금까지 중국의 고도자기 연구분야에서 가장 많은 연구 참여자와 연구 성과가 있는 분야를 꼽는다면 아마 차이 요가될 거라고 생각된다. 아직 그 어떤 박물관이나 기관에서도 실물 한 점을 소장하고 있지 않으며 공인된 실물이 아예 없으면서도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 뿐만이 아니고 차이요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오대 이후인 송대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부터 이미 얻기 어려운 , 아니 한번 실물을 한번 보는 것조차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차이요는 송 대 부터 청대까지 황실은 물론 귀족과 문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수집 대상이 되었다. 도자기의 황제라는 지위를 송대 때부터 지금까지 천년을 이어 온 것이다. 천년의 시간 동안 간혹 그 기물을 보았다는 기록과 ..

瓷皇-柴窯,도자기 황제-시요(차이요)

도자기의 나라라고도 불렸던 중국에서 역대 최고의 도자기는 어떤 것일까? 이런 현상을 중국의 문헌에서는 日晕라고 하기도 하고 晚霞라고 하기도 하는데, 晚霞현상, 시요를 설명하는 고대 문헌에서는 “雨过天晴云破处 者般颜色作将来”라고 표현 하기도 하였다. 중국 오대의 마지막 황제(954-960; 이름은 柴荣)였던 주 세종이 "비 온 뒤 하늘의 구름을 뚫고 나타난 그 모양(색 혹은 현상)을 도자기로 만들어 보아라"라고 도자기 제작 관리청 책임자의 물음에 지시를 했다고 고대 문헌에 전해져 내려온다. 중국에서 역대 최고의 도자기는 어떤 도자기일까? 소더비나 크리스티등 국제 경매에서 낙찰되는 중국 도자기들을 보면 중국 돈 수억(우리 돈 수백억) 원의 작품들이 무수하다. 청대의 건륭황제 혹은 옹정 시대의 법랑채 분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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