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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 균요(钧窑)鸡心罐

송대 균요(钧窑), 鸡心罐(계심관), 닭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송대에 유행하여 이후 청대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변형은 있었지만 꾸준하게 이어져온 기형이다. 보통 吉祥如意 "길상여의"의 뜻을 갖는 기형이며 용도는 茶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데, 송대에는 문방의 용도로 쓰였을 것이라고도 한다. 清代蓝浦《景德镇陶录》赞美曰:"窑变之器有二、一为天工,一为人巧,其为天工者,火性幻化,天然而成┅┅其由人巧者,则工,故以|作幻色,物态直名之窑变。" 청 대 발간된 《경덕전도록;경덕전 도자기에 대한 기록》에 균요를 찬미하는 글이 있는데, "요변이라고도 하는 균요를 얘기한다면, 하나는 하늘의 조화이며, 다른 하나는 도공의 정교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조화와 도공의 솜씨가 만나 만들어지는 작품이 바로 균..

시요의 유약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柴窑(시요)의 유약은 어떻게 만들었길래 그렇게 특별한 도자기로 여겨지는가? 清无名氏《南窑笔记》载:“柴窑, 周显德年间宝库火,玻璃、玛瑙、诸金石, 烧结一处, 因令作釉。其釉色青如天、明如镜、薄如纸、声如磬。其妙四,如造于汝州,瓷值千金。” 청 대 무명 씨가 지은 《남요 필기》라는 책에 차이요(시요)에 대한 중요한 글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시요는 후주 세종 년간 보석 창고에 있었던 유리 마노 여러 금과 옥을 불로 가공하여 원하는 부분에 부착을 하였는데, 지금에서 보면 그게 하나의 유약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 北宋欧阳修的《归田录》书中 “汝窑花觚”时写道:“柴氏窑色如天,声如磬,世所稀有,得碎片者,以金饰为器,北宋汝窑颇仿佛之,当时设窑汝州,民间不敢私造,今亦不可多得。谁见柴窑色 天青雨过时。汝窑磁较似,官局造无私。粉翠胎金..

중국 오 대 세종 柴 世宗(柴荣)

중국의 역사에서 오대라고 하면 907년에 당나라라고 멸망하고 생긴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后梁、后唐、后晋、后汉和后周) 다섯 왕조(907~960)를 말하며, 그 왕조에는 10개의 나라(정권)가 (902-979) 군웅할거를 하고 있었는데, 이 시대를 오대 10국 시대라고 부르며 간략히 오대라고 부른다. 이후960년에 송의 태조가 되는 조광윤에 의해 이 오대10국이 멸망하고 새로 통일하여 단일한 국가가 성립되었는데, 그게 宋이다. 후에 이 송도 멸망하여 남송이 되는데, 남송이 되기까지의 기간을 후대에는 북송이라고 부른다. 차이요와 관련하여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할 시기는 이 오 대 왕조 중에서 마지막 황제였던 후주의 두 번째 황제인데, 그 가 바로 오 대 시기 후주의 두 번째 황제인 후주 세종 柴荣(..

북송시대 차이요(시요)에 대한 인식

차이요는 954~960년 사이에 만들어진 걸로 여겨지는데,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북송 초기에 이미 차이요에 대한 문헌자료가 있다. 北宋欧阳修《归田录》书中 “汝窑花觚”时写道:“柴氏窑色如天,声如磬,世所稀有,得碎片者,以金饰为器,北宋汝窑颇仿佛之,当时设窑汝州,民间不敢私造,今亦不可多得。 谁见柴窑色 天青雨过时。 汝窑磁较似,官局造无私。 粉翠胎金洁,华胰光暗滋, 旨弹声戛玉,须插好花枝。” 송대 유명한 학자이자 관원이었던 구양수라는 사람이 《귀전록》이라는 책에서"여 요 화고"라는 여요 작품을 보면서 감상을 하고 평을 하는데 그 과정에 차이요와 비교하며 감상을 하는 내용이다. 구양수라는 사람은 1007년 출생하여 107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실제 위의 귀전 록이라는 책은 실존하며 위의 내용이 기재되어있다. 그런데 문제는 ..

차이요 연구 현황,

도자기의 황제로 여겨지는 차이요, 지금까지 중국의 고도자기 연구분야에서 가장 많은 연구 참여자와 연구 성과가 있는 분야를 꼽는다면 아마 차이 요가될 거라고 생각된다. 아직 그 어떤 박물관이나 기관에서도 실물 한 점을 소장하고 있지 않으며 공인된 실물이 아예 없으면서도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 뿐만이 아니고 차이요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오대 이후인 송대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부터 이미 얻기 어려운 , 아니 한번 실물을 한번 보는 것조차도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차이요는 송 대 부터 청대까지 황실은 물론 귀족과 문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수집 대상이 되었다. 도자기의 황제라는 지위를 송대 때부터 지금까지 천년을 이어 온 것이다. 천년의 시간 동안 간혹 그 기물을 보았다는 기록과 ..

瓷皇-柴窯,도자기 황제-시요(차이요)

도자기의 나라라고도 불렸던 중국에서 역대 최고의 도자기는 어떤 것일까? 이런 현상을 중국의 문헌에서는 日晕라고 하기도 하고 晚霞라고 하기도 하는데, 晚霞현상, 시요를 설명하는 고대 문헌에서는 “雨过天晴云破处 者般颜色作将来”라고 표현 하기도 하였다. 중국 오대의 마지막 황제(954-960; 이름은 柴荣)였던 주 세종이 "비 온 뒤 하늘의 구름을 뚫고 나타난 그 모양(색 혹은 현상)을 도자기로 만들어 보아라"라고 도자기 제작 관리청 책임자의 물음에 지시를 했다고 고대 문헌에 전해져 내려온다. 중국에서 역대 최고의 도자기는 어떤 도자기일까? 소더비나 크리스티등 국제 경매에서 낙찰되는 중국 도자기들을 보면 중국 돈 수억(우리 돈 수백억) 원의 작품들이 무수하다. 청대의 건륭황제 혹은 옹정 시대의 법랑채 분채 등..

청대 옹정(1722-1735)시기 청화 배(두점)

청대 옹정(1722-1735) 시기 청화 배(두 점), 청대 옹정 시기 청화백자의 자장 중요한 특징은 백색은 그 어떤 것 보다 희어야 하며 청화 색은 그 어떤 것 보다 푸르러야 한다. 실물은 아래의 사진이 실물에 더 근접하다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기형은 엄정하고 청화 발색은 옹정 시기 청화 자기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몽환적이라고 할 수 있고, 그림과 글씨의 필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송 대(960-1279) 교태 자기

宋代绞胎瓷器 송 대 교태 자기 합 교태 자기는 당 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당 대에 새로 만들어져 송대까지 이어진 신종 자기라고 할 수 있다. 두 가지 색 혹은 그 이상의 태토 색으로 반죽을 하고 성형을 하여 다양한 문양을 내는 방식인데 참으로 신묘하다고 할 수 있다. 발 굴 된 자료 중에 제작 년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초기의 유물이 두 점 발굴되었는데, 당 대인 706년의 황 태자 묘와 714년의 한 정승의 묘에서 출토된 교태 자기이다. 당 대의 교태자기는 반은 토기 반은 자기의 형태인데, 점차 자기화가 진행되어 송대에 이르러 자기가 된다 교태 자기는 중국 도자사에서 돌출된 하나의 품종이지만 예술적인 면에서 보면 이어지는 도자 역사에서 아주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역사적 지위를 갖는다. 교태 자기는 당..

당 대(618-907) 당삼채 작품 모음

당삼채(唐三彩), 당삼채란 唐代三彩釉陶器 당대 삼채 도기의 줄임말이다. 당 대의 저온유 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유면의 색으로 황 녹 백 갈색 람 흑등 다양한 색이 있으나, 주로는 황 녹 백으로 이루어져 삼채라고 하며 당대의 삼채를 후대에 당삼채로 통칭하게 되었다. 당삼채는 1905년 예 성도인 낙양의 북망산이라는 곳에서 당대의 많은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이 곳에서 바로 이런 류의 당삼채가 출토되어 이때부터 당삼채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당삼채에 대해서 고대문헌에도 기재된 부분이 거의 없고 당시 만들어진 다양하고 수많은 작품들의 제작 목적이 부장품이라서 근 천년이 넘게 당삼채 자체가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존재를 몰랐으며 겨우 1905년에 이르러서야 이의 존재를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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