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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48

고려시대 청자 잔

고려시대 청자 잔(靑瓷 盞) 원래는 탁(받침)이 함께 있는 잔탁(盞托)인데 잔만 남아있다. 고려 초기의 것으로 유면의 색은 어둡지만 전반적으로 양호한 품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색 잔은 고려와 같은 시기의 중국 송대 湖田窑호전요의 影青釉 영청유 잔이다. 역시 잔탁인데 잔만 남아 있다. 같으면서 다른, 아니면 다르면서 같은 느낌의 잔 이다. 아래는 한국과 중국 각 박물관의 관련 기물들의 비교 사진자료들이다

중국도자기-송대자기

송대자기 우리의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중국의 북송시기 월주요 주전자 우리의 고려청자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월주요 청자인데 청자 유면, 음각 기법, 굽의 제작방식(규석받침처럼 받침을 사용하여 구움), 기형등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우리의 청자는 중국의 송대 자기중 위의 월주요와 요주요 정요 자주요등의 제작기술을 전수 받아 독특한 우리만의 멋을 내어 완성한것으로 전해진다. 아래의 기물들은 송대자기의 다양한 작품들로 중국 도자기 중 송대자기 전체의 느낌을 얻는데 도움이 될걸로 본다.

고려시대 청자 석류모양연적

고려시대 청자 석류모양연적 고려시대 12세기 높이 7.2cm 석류는 풍요를 상징합니다.수수한 모습으로 별로 드러내지 않다가 어느 가을날 익을 대로 익어서 스스로 붉은 배를 갈라 속을 터뜨리면 그 속에 진주보다도 더 영롱한 붉은 알을 수없이 배태하고 있음을 목도합니다. '평범 속의 비범한 풍요'가 바로 석류의 함의(含義)라 합니다. 한국에는 석류가 고려 초기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익어서 배가 갈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형상화 했는데 잎과 함께 손잡이 물 따르는곳까지 현실감있게 표현 되었다. 기능적으로도 손에 쥐기 편한 손잡이와 실제 물을 넣어 따르는데도 편리와 기능성이 있다. 유면의 색은 전형적인 비색이라할 수 없지만 아주 투명한 유리질감을 보여주며 옥의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복부에 음각선으로..

고려시기 청자양각죽절문주자

고려시기 청자양각죽절문주자(青瓷阳刻竹节纹注子) 전체높이 9.4cm , 작은 주전자 , 12세기 전반 대나무를 쪼개서 맞춘 모양의 몸체에 대나무 모양을 한 귀때부리와 손잡이가 달려있다. 뚜껑의 선이마 문양도 몸체의 그것과 그대로 이어지며 뚜떵 꼭지와 손잡이 윗부분에 구멍을 내어 서로 끈으로 이을 수 있게 고리가 달려있다. 이러한 죽절형의 기형은 강진 사당리 가마터의 파편에 많이 보이는데 12세기 전반의 강진 사당리 작품으로 판단된다. 유면은 옅은 푸른색을 머금은 초기청자의 비색을 보이며(실제는 사진보다 더 푸른색에 가깝다) 미세한 기포가 있고 빙렬이 있지만 투명한 유리질감을 보인다. 굽 바닥에는 세개의 규석 받침을 사용하였으며 뚜껑에는 내화토 빚음눈 자국 흔적 세가가 보인다. 아래는 각 박물관의 주전자들인..

清代 雍正斗彩小胆瓶

清代 雍正斗彩小胆瓶(청대 옹정시기 두채 단병) 높이 13.1cm , 청대 옹정시기(1722~1735) 두채 중국 도자기의 여러 종류 중에서 두채는 유면 아래 먼저 청화로 문양이나 그림을 그리고 유면위에 다시 분채와 마찬가지로 다시 그림을 그려 만드는 제작 방식을 말하는데, 청화와 유면위의 여러 색채가 서로 미를 다툰다는 의미로 두채라고 불린다. 두채중에서 명대의 성화시기 작품과 청대의 옹정시기 작품을 최고로 여기는데 분채보다 제작기술이 어렵고 수량이 많지 않아 귀하며 특히 현존하는 옹정의 두채는 대부분 완이나 접시가 대부분으로 위와같은 병은 아주 드물다. 아래는 중국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참고할만하다.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병

고려시대 청자상감국화문병 (青瓷镶嵌菊花纹瓶) 높이 18.9cm 13세기 말 고려 전성기때의 기형과 비교하여 배가 많이 들어가서 약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유면의 색은 흙색을 띄고 문양 장식에 있어서도 분청사기의 전형적인 특징인 도장을 찍듯이 인화문 기법을 사용한것으로 보아 상감청자 시대에서 분청사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유지질감의 유면과 국화문 상감의 장식기번은 원숙한 기술임을 보여준다. 이런류의 작품이 드물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고려청자 과형주전자

고려청자 과형주전자 ( 青瓷瓜形注子) 높이 5.1cm , 길이 12.3cm , 12세기 잘 익은 참외모양의 몸체에 쭉뻗은 주구(注口)와 앙증맞은 손잡이, 그리고 뚜껑이 달린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소형(小形) 주전자이다. 몸체의 동상부(胴上部)가 풍만하여 안정감을 주며, 뚜껑이 손잡이와 연결되도록 작은 고리를 장식하여 돋보인다. 전면에 담녹청색(淡綠靑色)이 짙은 청자유(靑磁釉)를 시유하여 광택이 나며, 굽다리에는 내화토를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참외형 주전자는 술을 담아 사용하였을 20㎝ 크기의 주전자가 일반적이나 이 주전자는 10㎝ 안팎의 소형으로 식초·간장·기름 등을 담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중반경 청자의 전성시기에 강진(康津) 사당리의 가마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가마터..

大明宣德龙凤纹高足杯

大明宣德龙凤纹高足杯 대명선덕 용봉문 고족배 선덕년제(1425~1435) , 높이 8.4cm, 입구지름 8.9cm 관지와 약간의 무늬에 청화를 넣었으며 외부 전면에 용 과 봉황을 선명하게 양각으로 입혔다. 전체적인 기형은 엄정하며 관지는 관요로서의 기품이 있으며 용과 봉황의 문양은 이주 섬세하여 생동감이 넘친다. 색은 순백을 띄며 입구의 변은 날카로울 정도로 얇아 제작의 높은 기술을 실감할 수 있다. 그외 유면은 투명한 유리질감을 준다. 명대 초기의 선덕황제는 10년의 짧은 재임 기간이지만 도자사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지위를 갖는다. 그 중 고족배는 선덕시기의 대표적인 기형이라 할 수 있으며 후대의 황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이를 수집하기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으며, 그래서 지금의 고궁은 물론 많은 박물관에서..

北宋耀州窑刻花梅瓶

北宋耀州窑刻花梅瓶 송대 요주요 매병 높이 24.5cm 북송 시기 초기의 요주요 작품으로 최상급의 품질을 갖는 매병이라고 할 수 있다. 요주요의 최고 전성기는 오대시기(906~960)라고 할 수 있는데 오대가 무너지고 송나라(북송)가 들어서면서 여기 요지들의 도공들이 중국 각지로 흩어지게 되는데 그 일부의 도공들은 당시 월주요의 도공들과 더불어 우리의 고려로 들어가서 고려청자의 기반 을을 잡는데 일정정도 역할을 했을걸로 추정한다. 본 기물과 함께 아래의 사진자료들은 우리의 고려청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우선 아래는 오대시기의 요주요 작품들(요주요 박물관 소장) 아래는 오대이후 이어진 북송시기 박품들(각 박물관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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