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7/05 48

청자음각모란문사이항아리

청자음각모란문사이항아리(靑磁陰刻牡丹纹壺) 높이 뚜껑포함 18.9cm , 12세기 초엽 다른 느낌의 색상. 사이호란 네개의 귀가 달린 항아리란 뜻인데 당시 이런 유형은 다양하게 발견되는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기형으로 판단된다. 실제의 기물 색과 위 사진의 색에 일정정도 거리가 있는데 본래의 색을 사진으로 담아내기가 어렵다. 약간 녹색을 머금은 비색유라 할 수 있는데 , 사진으로 볼 수 있는 모양이나 그림 기형등의 특징외에 본 기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면에 빙렬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아래의 사진 자료 중에서도 호암미술관의 작품에는 빙렬이 없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아래는 본 기물관 비교할 수 있는 참고자료인데 순서대로 중앙박물관 리움미술관 일본 동양도자박물관의 소장품 들이다 그중 특히 중앙박물관의 상감청..

고려청자 음각 연꽃당초무늬 표주박모양병

고려청자 음각연꽃당초무늬 표주박모양병 ( 靑磁阴刻莲唐草纹葫芦瓶) 높이 14.7cm , 12세기의 것으로 추정 투명한 유면아래 선명한 음각 문양이 있고 유면은 큰 빙렬이 있다. 크기는 작지만 그림의 내용과 기형의 뜻은 많은 자손과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것으로 의미는 더할나위 없이 크고 만지면 옥을 만지는 듯하다.

고려 상감청자 운학문병

고려 상감청자 운학문병 (高丽 镶嵌青瓷 云鹤纹瓶) 높이 25.6cm , 12세기 중 후반 하늘에서 구름 속으로 네마리의 학이 내려오는 모양을 현실감 있게 형상화 한 작품 고려청자에서 많이 나타나는 학은 원래 두루미라고 불리며 우리의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는 새인데 , 예로부터 이 학의 고고한 기상은 선비의 이상적인 성품을 상징하여 왔으며, 장수 를 상징하는 대표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학의 의미는 우리 고려 뿐만아니라 고려와 같은 시기인 중국의 송대에서도 비상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도교와 함께 결부되어 신선이 타고 다니는 영물로 인식되었다. 아래 사진은 송대(북송) 마지막 황제인 송 휘종(1082.05.05—1135.06.05)이 그린 그림으로 중국의 국보(요녕성 박물관 소장)라고 ..

고려 상감청자 물고기문 병

고려 상감청자 물고기문 병 높이 17.2cm , 1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 상감 그림이 하늘의 구름과 학 그리고 바다의 파도와 물고기가 함께 그려져 있는데 보통 상감청자에서는 흔치 않는 그림 소재의 배합인데 한참 후의 분청사기 초기 작품(15세기 초)인 아래 사진자료에서도 같은 배합을 볼 수 있다. 보물 347호 분청사기 상감 물고기 무늬 매병 1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清代早期 青花 청대초기 청화 두점

清代早期 青花 청대 초기 청화 두점 清 顺治 人物故事图盖罐 청대 순치시기(1643~1661) 인물고사도 개관 청대의 첫번째 황제로 아직 체제 정비가 되지않고 통치기반이 공고하지 않은 상황으로 특별히 관지는 없지만 본 기물과 같은 류의 것을 보통 관요로 여긴다 . 청대의 경우 년호를 넣어 관요를 구별하는것은 두번째 황제인 강희 초기가 지나서야 "대청강희년제"와 같은 관지를 써서 관요를 구별하였다. 혼란했던 수십년간의 명대말기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수준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역시 청대 초기의 청화 세( 洗 ), ”康熙辛亥中和堂制”款人物故事图洗 강희 재임 10년(1671년)시기의 관요. 여기서 말하는 중화당은 원명원의 황제거주 궁을 말한다. 강희 재임 61년 중 10년차 까지도 아직 강희년제의 ..

寿山石 闲章 수산석 한장(인장/도장)

寿山石 闲章 수산석 한장(인장/도장) 수산석의 수집(소장)은 옛부터 태산같은 氣를 얻고 유지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행해지는데, 태산이나 그런 큰 산을 집에 모셔둘 수는 없고 , 비록 작 지만 태산을 대신 하고 이를 능가하는 氣를 품은 작은 돌을 내 손에 담는다는 의미가 있답니다. 작은 閑章(한장)이란 이름이나 직책 기관명을 새긴 인장과 달리 별호·격언·성어·시문 등을 새긴 도장을 말한다. 아래는 모두 수산석으로 옛 작품들이며 나름 명인들의 소장품이며 귀한 재질을 사용하여 정성껏 의미있는 내용들을 조각한 훌륭한 작품들이다. 청대 가경 2년(1797년)작품으로 조각가의 호와 당대의 싯구가 새겨져 있다. 道光6年(1826년)작품으로 역시 당대의 싯구(詩語)를 새겨 넣었다.

고려시대 연리문練里紋 청자 완碗과고觚

고려시대 연리문練里紋 청자 완碗과고觚 화고; 높이 6.5cm 입구지름 3.9cm 완; 높이 4.5cm 입구지름 8.5cm 모두 12세기 중반의 것으로 추정 실제 "색" 먼저 화고(花觚)는 중국의 商代와 周代의 청동기 기형을 따서 만든것인데 술병으로 사용되던 것으로 , 중국의 송대에서 도자기로 이 기형을 재현해서 尊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 고려에서는 이런 기형을 흔히 볼수 없는데 더군다나 이렇게 작은 기물로는 술잔으로도 사용이 어려워 당시 중국 송대에서와 같은 尊의 의미로 제작이 되어 상류층에서 감상용으로 제작이 되었을것으로 추측이 된다. 유약이 두꺼운 부분에 당시 청자에서 보이는 비색유가 은은하게 보인다. 전반적으로 기벽은 얇으며 유면도 얇게 시유되어 투명하며 전체적으로 빙렬이 나 있다. 아래는 완인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