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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 40

청자송(靑瓷頌)-이규보(李奎報 1168~1241)

청자송(靑瓷頌)-이규보(李奎報 1168~1241) ‘동국이상국집’ 제13권에 제목 없이 ‘김 아무개가 녹자(고려청자) 술잔을 보고 시를 지어 달라고 하기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운(詩韻)에 따라서 지었다’고 적혀 있다. 그 詩의 일부 낙목동남산(落木童南山) 나무를 베어 남녘산이 벗겨지고 방화연폐일(放火烟蔽日) 불을 지펴 연기가 해를 가리웠지 도산녹자배(陶山綠瓷杯) 푸른색 자기 술잔을 구워내 간선십취일(揀選十取一)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영연벽옥광(瑩然碧玉光)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기피청매몰(幾被靑煤沒)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었나 영롱초수정(玲瓏肖水精) 영롱하기 맑은 물을 닮고 견경적산골(堅硬敵山骨) 단단하기 바위와 맞먹네 내지연전공(迺知埏塡功)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를 사차천공술(..

고려시대 순청자-청자음각 회문베개

고려시대 순청자-청자음각 회문베개 青瓷阴刻回纹瓷枕 길이 29cm (변)높이 12.8cm 고려 11세기 전체 네면 모두 回紋으로 장식으로 했는데, 이 회문은 고려시대 음각 혹은 상감등 많은 자기에 표현되었던 당시 주요 문양 중의 하나이다. 회문은 당시 중국에서도 富贵不断头的一种纹样(부귀가 끊임 없이 반복되어 끝이 없다)라고 해서 민간에 유행하던 문양이었는데, 이 문양은 商代 周代 청동기 기물들에도 다양하게 사용이 되던 오래된 문양이다. 이의 뜻은 앞서 말한것과 같이 그리 단순 하지많은 않다. 민속신앙 혹은 도교 불교등의 종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오히려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양이다. 李奎報,『東國李相國集』 第 16卷 古律詩 綠瓷枕 이..

고려시대 청자연적-고려문인 이규보와 청자연적

고려시대 청자 연적-고려 문인 이규보와 연적 고려 12세기 상형청자 동자형 연적과 원숭이모양 연적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第8卷 古律詩 / 靑磁硯滴 이규보(李奎報, 1168~1241) 幺麽一靑童 緻玉作肌理 (요마일청동 치옥작기리) 曲膝貌甚恭 分明眉目鼻 (곡슬모심공 분명미목비) 競日無倦容 提甁供滴水 (경일무권용 제병공적수) 我本好吟哦 作詩日千紙 (아본호음아 작시일천지) 硯涸呼倦僕 倦僕佯聾耳 (연학호권복 권복양농이) 天喚猶不應 喉嘎乃始已 (천환유불응 후알내시이) 自汝在傍邊 使我硯日沚 (자여재방변 사아연일지) 何以報爾恩 愼特無碎棄 (하이보이은 신특무쇄기) 어느 한 청의동자(靑衣童子) 고운 살결 백옥 같구나. 허리 굽실거리는 모습 공손하고 얼굴도 눈매도 청수(淸秀)하구나 종일토록 게으른 태도 없어 물병 들고..

고려시대 청자 양음각 연화문 주자

고려시대 청자 양음각 연화문 주자 青瓷 陽陰刻莲花纹小注子 높이 9.1cm 고려 12세기 전반 연꽃을 양각으로 하고 그 안의 세밀한 선을 음각으로 하였다. 세개의 규석받침이 있고 약간의 유면 갈라짐 현상이 있고 유색이 약간 탁하다. 투명도가 덜 하다. 대나무 모양과 비교해서 유색은 덜 함이 있지만 기형의 안정감으로는 더한거 같다.

고려시대 청자 양인각 포도동자문완

고려시대 청자 양인각 포도동자문완 青瓷 阳印刻葡萄童子纹碗 높이 6.2cm 입구지름 14.8cm 12세기 전반기 이런 장식기법을 印刻(또는 陶範도범)인각이라 하는데 문양을 틀에 미리 만들어서 도장 찍듯이 (쉽게 molding)해서 양각 혹은 음각의 문양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기법의 작품은 현존 작품들 중 그리 많지가 않아 많이 귀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런 도범으로 포도와 아이 문양을 넣어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였다. 아래는 같은 인각印刻작품으로 보물 1031호 청자양인각파어포련문접시(靑磁陽印刻波魚蒲蓮文접匙) 호암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국보 253호로 외벽은 상감으로 문양을 냈고 안쪽으로 인각印刻방식으로 문양을 냈다. 이름은 청자 양인각 연당초-상감 모란문 은구대접 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아래는..

고려시대 청자 연화당초문완

고려시대 청자 연화당초문완 青瓷莲花唐草纹碗 높이 4cm 입구지름 13.8cm 고려 12세기 전반 12세기 초 중반의 청자 전성기 때 작품으로 음각의 그림이 섬세하고 정교하다. 큰 기포가 유관으로 선명하게 확인가능하며 유면은 투명하다. 빙렬이 전현 발생되지 않았으며 유면 표면에 윤기가 났으며 생각되어지는 것 보다 더 묵직하다. 굽에 세개의 규석받침 흔적이 있다. 당시의 상등품 다완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高丽镶嵌青瓷 牡丹唐草纹壶 높이 20.8cm 13세기 후반으로 추정 아래는 본 기물과 거의 같은 작품으로 일본의 개인 소장품이라고 함. 이름은 "고려시대 청자상감 목단당초문항아리" 이며 높이 22.1cm 로 공개된 하나의 작품 두 종류의 사진 13세기로 추정 이 작품은 일본의 개인 소장품으로 더 이상의 설명과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고려시대 청자로 보기 드문 유형의 항아리 기형으로 ,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는 민간에 까지 많이 좋아했던 , 지금도 달 항아리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는 그런 기형이다. 12세기 전성기때의 청자 상감작품들과 비교해서 (흑 백)상감과 유면에 뚜렷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안정된 기형과 유면의 색 , 그리고 전반적인 그림의 배열등으로 보아 ..

宋代 定窑-黑定 송대자기 정요-흑정

宋代 定窑-黑定 송대자기 정요-흑정 定窑-黑定 莲花纹盏 정요 흑색 연화모양 잔 높이 10.4cm 북송시기 정요는 북송대 말기 여요가 최고의 자기가 되전 까지 송 초기부터 황실에 공납되던 황실 자기로 南宋叶寘《坦斋笔衡》说:“本朝以定州白瓷器有芒,不堪用,遂命汝州造青 窑器,故河北、唐、邓、耀州悉有之、汝窑为魁。 남송시기 저술에 "정주백자-정요-에 뒤집어 굽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 여주에 청자-여요-를 만들게 했다"는 ,,, 즉 이 전까지는 송대 황실의 공납자기 였던 것이다. 미국 보스톤 박물관의 정요- 그 중 검은색 정요 한점 정요는 보통 백자를 의미하는데 드물게 다른색들을 만들기도 했는데 , 明曹昭《格古要论》: “有紫定色紫,有墨定色黑如漆,土俱白,其价高于白定, 俱出定州。 명대의 유명한 저술인 격고요룬에 "포도색을 ..

清代康熙 青花 松鼠葡萄纹碗 청대 강희 다람쥐포도문 청화완

清代康熙 青花 松鼠葡萄纹碗 청대 강희 다람쥐포도문 청화완 입구지름 20.8cm 주요 특징은 康熙 薄胎 芒口 강희 얇은 태골, 뒤집어 굽는 기법사용 대명성화년제大明成化年制관지가 있으나 청대 초기 강희 시대 관요 작품으로 추정 대명 성화년제 관지와 얇은 태, 뒤집어 굽는 기법사용, 청화색과 유면 동일의 미국 메트로 폴리탄 소장품으로 청대 강희로 표기 본 기물의 문양인 담람쥐와 포도문양은 중국 미술에서 당대로 까지 올라가는데 당대에는 청동으로된 동경铜镜문양에 사용되기 시작해서 송대에는 그림 작품들에 , 그리고 명대에 이르러는 그림과 다양한 공예 미술품들에 사용되었는데 그 중 특히 도자기에는 이미 보편화가 되었다. 이의 전통은 청대를 이어 민국시기까지 이어진다. 이 문양에서 다람쥐는 12간지의 첫번째인 子를 의..

明代 洪武 釉里红 缠枝牡丹菊纹碗명대자기 홍무시기 유리홍완

明代 洪武 釉里红 缠枝牡丹菊纹碗명대자기 홍무시기 유리홍완 입구 지름 21.6cm 홍무洪武(1368~1398) 시기 유리홍 완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홍무)은 원래 젊은 시절 밥을 제때 제대로 먹기위해 스님이 되기도 했지만 한때의 직업으로 도자기를 파는 장삿꾼이기도 했답니다. 홍무시기의 관요 도자기 중 아직 공식적으로는 "대명홍무년제"같은 관지는 없다. 관요와 민요의 구별이 없는 셈이다. 원 나라를 멸망 시키고 새로 건국을 하는 과정이라 당연히 혼란 스런 상황이며 , 건국시기의 수도는 지금의 남경으로 홍무 다음의 황제인 영락시기 지금의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다. 명대 정식 관요의 구별은 이 두번째 황제인 영락 시기 후반기 부터 가능한데 바로 사회의 안정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어쨌든 본 작품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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